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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차별반대 열기…미국 민주당 ‘여성 유색인종’ 부통령 후보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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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미국 민주당이 오는 11월 3일 치를 2020년 대선에 여성 부통령 후보를 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78) 전 부통령이 지난 3월 15일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연방상원의원과 토론 도중 여성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여성 부통령 후보가 나오면 1984년 민주당의 제럴딘페라로와 2008년 공화당의 세라 페일린 이후 세 번째가 된다.

페미니즘·인종차별 문제 부상하며 #흑인·히스패닉·아시아계 여성 중 #상원의원·주지사·시장 10명 압축 #‘확실한 카드’ 미셸 오바마도 거론

여성 부통령 후보 계획은 2017년 10월 미국에서 여성들이 성폭행·성희롱·성차별을 대대적으로 고발한 미투 운동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정치가 젠더 평등에 기여해야 한다고 외쳐온 페미니즘 정치의 성과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난 5월 25일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벌어지면서 선택 범위는 ‘소수파 여성’으로 더 좁혀지고 있다. 미국 주요 정당은 부통령 후보를 대선 후보가 지명한다. 바이든은 인물의 정치적 카리스마와 정치·행정 경험, 모금 능력, 득표력 등 다양한 변수를 전략적으로 고려해 러닝메이트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카말라 해리스(56)

카말라 해리스(56)

CNN방송과 AP통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민주당 여성 정치인 가운데 부통령 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10명 이내로 압축된다. 이미 정치적 업적을 쌓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인물들이다. CNN은 카말라 해리스(56) 연방상원의원(캘리포니아), 케이샤 랜스 바텀스(50) 애틀랜타 시장(조지아), 발 데밍스(63) 연방하원의원(플로리다), 엘리자베스 워런(71) 연방상원의원(매사추세츠)을 주목했다. AP통신은 미셸 루한 그리샴(61) 뉴멕시코 주지사와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무게를 실었다.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태미 덕워스(52)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을 유력 예비후보로 꼽았다.

미셸 루한 그리샴(61)

미셸 루한 그리샴(61)

그리샴 지사는 뉴멕시코에서 12대를 살아온 히스패닉(또는 라티노) 집안 출신이다. 주목할 점은 히스패닉의 정치적 가치다. 히스패닉은 미국 독립 이전 멕시코 땅이었다가 나중에 미국이 차지한 캘리포니아·뉴멕시코·텍사스 등에 원래 거주하던 스페인 이민자 후손이나 나중에 이민 온 중남미계다. 미국의 인종 분포를 보면 백인 76.5%에 흑인 13.4%, 아시아계 5.9%의 분포인데 히스패닉은 18.35%로 흑인보다 많다. 히스패닉은 인종은 아니지만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별개의 인구 집단이자 정치 세력이다. 다만 히스패닉의 대다수가 아일랜드계인 바이든과 같은 가톨릭 신자라는 점은 부담으로 지적된다.

발 데밍스(63)

발 데밍스(63)

라이스 전 보좌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스탠퍼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다. 국무부 출신으로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2013~17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과 2009~13년 유엔대사를 맡았다. 성공한 흑인 여성 외교관으로 평가받지만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을 오래 맡았던 바이든과 전문 분야가 중복되는 것이 한계다.

케이샤 랜스 바텀스(50)

케이샤 랜스 바텀스(50)

유력 주자로 꼽히는 해리스 연방상원의원은 인도 타밀족 출신의 유방암 과학자인 어머니와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인 자메이카 출신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변호사 출신으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지낸 해리스는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흑인’이라고 말한다. 바텀스 시장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변호사인데 기업체와 로펌, 공공분야 등에서 고루 경력을 쌓은 게 장점이다. 판사와 시의회 의장을 거쳐 시장을 맡아 입법·사법·행정 전반을 경험했다. 데밍스 연방하원의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경찰에 27년간 근무하며 플로리다주 올란도의 첫 여성 경찰서장을 지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1월 진행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에서 실무를 맡아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태미 덕워스(52)

태미 덕워스(52)

덕워스는 미국 퇴역군인과 중국계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국 방콕에서 태어난 아시아계다. 1992~2014년 미 육군에 복무했으며 헬기 조종사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두 다리를 잃어 의족을 차고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2009~2011년 국가보훈부 차관을 지냈으며 일리노이주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2017년 연방상원의원이 됐다. 미국 연방상원의원 중 두 번째 아시아계이자 첫 참전여성이다.

미셸 오바마

미셸 오바마

워런은 백인으로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파산법을 가르쳤다. 변호사로 소비자 보호와 경제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과 함께 미국 민주당 진보세력의 주축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바이든과 대결했다. 바이든도, 워런도 모두 70대라는 점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주목할 점은 BBC방송이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56)를 유력 부통령 예비후보로 꼽았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정치·행정 경험은 부족하지만 카리스마와 정치자금 모금능력, 득표력에선 다른 어느 후보 못지않다. BBC는 오바마가 바이든에게는 가장 ‘안전한’ 러닝메이트가 되겠지만, 유권자 눈길이 바이든 대신 오바마에게 쏠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올해 미 대선은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즘 정치와 소수파가 자기주장을 분명하게 펼치는 정체성 정치가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