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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도 이전이 부동산 분노 막는 방패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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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제 김태년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이 카드를 꺼낸 후 여당 내에선 작전이라도 짠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권의 지지율 1위 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어제 아침 라디오에 나와 “행정수도 이전은 여야가 합의한다든가 또는 특별법으로 만든다든가 … 방법이 없지 않다”며 김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 의원과 당권 경쟁 중인 김부겸 전 의원도 “(행정수도 이전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했고 김경수 경남지사, 김두관 의원 등도 ‘천도(遷都)론’에 적극 가세했다. 김 원내대표는 어제 당 회의에서 거듭 필요성을 주장한 뒤 국회에 행정수도 완성 특위 구성을 제안하면서 아예 총대를 메고 나섰다.

여당 핵심들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코로나 국난 중 논쟁적 이슈, 갈등 부를 뿐

하지만 여당의 갑작스러운 행정수도 이전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집값 폭등으로 인한 부동산 여론 악화가 극에 달한 시점에 수도 이전을 주장하는 것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덮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오죽하면 “부동산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선거용 카드가 아니길 바란다”(심상정 대표)는 일침이 정의당에서 나왔을까. 파급력이 엄청난 국가적 대사를 ‘부동산 실패 비난’이란 곤경에서 벗어날 카드로 꺼내들었다면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사안이다. 당시 헌재는 청와대와 국회의 서울 소재 등을 근거로 “수도 서울은 관습 헌법”이란 취지로 판단했다. 이는 청와대와 국회를 이전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당 내에선 “개헌이나 국민투표까지 안 가도 충분히 할 수 있다”(김 원내대표)는 등의 말이 나오는가 하면 “기존 행복도시법을 개정하거나 새로 특별법을 제정하되 여기에 행정수도 이전 내용을 넣어 헌법소원을 추진할 것”이란 방안도 거론된다. 지금까지 여당의 행태로 봐선 행정수도 이전 문제도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없이 밀어붙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 사안은 개헌이나 이에 준하는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인 사안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가 덮치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여권에선 현 상황을 국난(國難)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전 국민에게 국고를 베어내 재난지원금까지 지급했다. 국민은 경제난에다 코로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뜬금없이 천도라는 논쟁적인 이슈를 여당이 던지는 게 과연 적절한지 되묻고 싶다. 안 그래도 갈등 중인 여야가 소모적으로 싸울 명분만 하나 더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