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장관 승인후 수사? 檢 수사범위만 확대" 靑시행령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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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청와대가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시행령 초안이 검찰의 수사 범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 승인을 거쳐 검찰청법 시행령에 규정되지 않은 주요 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입구. 중앙포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입구. 중앙포토

청와대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시행령 초안을 대통령 직속 수사권개혁후속추진단 전체회의에서 공개하고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의견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령 초안에는 국가ㆍ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경우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청 관계자는 21일 “법무부 장관이 승인만 해서 다 수사할 수 있다면 검찰의 직접수사를 제한하고자 하는 당초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다”며 “운용하기에 따라서 검찰이 광범위하게 수사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조항은 시행령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달 4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검찰청법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6대 범죄)’로 명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으로 위임하도록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마련한 시행령의 경우 법무부 장관의 승인만 있으면 6대 범죄 이외의 검찰 수사도 가능하기 때문에 모법인 검찰청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게 경찰의 논리다.

경찰 관계자는 “여당 법사위원들이 시행령 초안 내용에 반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줄이겠다’고까지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도 이런 내용이 담긴 초안을 받아보니 청와대가 검찰 의견을 다 받아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청와대가 이렇게 하고 싶어했는지, 법무부ㆍ검찰이 강하게 요구해서 청와대가 들어준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행령 초안에는 이 밖에도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의 범죄 ▶3000만원 이상 뇌물을 받은 부패 범죄 ▶마약 밀수 범죄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찰은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에 마약 밀수 범죄 등이 포함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은 마약 수사를 가져가려고 집요하게 주장해왔다”며 “마약은 전통적 치안형 범죄이지, 검찰의 직접 수사를 명시한 6대 범죄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에 밝은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6대 범죄 유형에 검찰이 마약 수사와 사이버 범죄를 넣고 싶어했다. 처음엔 경제범죄로 넣었다가 대형 참사로 넣자는 검찰 의견을 청와대에서 받아준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시행령 초안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회동해 최종 내용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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