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진영 “난 서희경 키드”, 박현경 “고진영 언니가 날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축하 파티에서 만난 박현경, 서희경, 고진영(왼쪽부터). 우상조 기자

축하 파티에서 만난 박현경, 서희경, 고진영(왼쪽부터). 우상조 기자

고진영 : “현경이 우승하고 나서 예뻐진 것 같다.”
박현경 : “언니 나 아무것(성형수술)도 안 했어요. 하하.”
서희경 : “표정 좋아지고 자신감이 있어서 예뻐 보이는 것 같다. 우승하고 나니까 마음 편해?”
박현경 : “첫 우승 후엔 오히려 이를 유지하는게 부담이었는데, 두 번 우승하니까 이제 좀 좋아요. 진영 언니 덕분이에요.”

멘토-멘티 관계 3명 ‘골프 수다’ #서 “다른 선수와 벽쌓을 필요없어” #고 “늘 부모님 실망시킬까봐 걱정” #박 “두번 우승하니까 부담 덜게돼”

여자 프로골프 샛별 박현경(20)과 세계 1위 고진영(25), 레전드 서희경(34)이 한자리에 모였다. 용품 스폰서 업체(브리지스톤)가 마련한 박현경의 시즌 2승 축하 자리에서다. 재밌는 건 고진영이 박현경의 멘토, 서희경이 고진영의 멘토라는 점이다.

고진영은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 늘 서희경 언니가 우승했다. 나는 희경 키드였다”고 소개했다. 서희경은 “희경 키드라는 말은 처음인데”라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이다. 고진영은 “희경 언니는 스윙도 예쁘고 키도 커서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언니 쓰는 퍼터와 클럽을 따라 썼고 언니 코치님(고덕호)을 찾아가 스윙도 배웠다. 언니를 처음 볼 때부터 반했는데…”라며 미소를 지었다.

서희경은 “내성적이라 후배를 보듬어 주는 스타일이 아닌데, 진영이는 귀엽고 당차게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고진영은 미국 진출 전에 서희경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요즘도 그의 집에 가서 아이들(아들 셋)을 봐주기도 한다.

박현경이 거들었다. 그는 “진영 언니는 너무 멋지다. 완벽한 세계 1위다. 나도 언니가 좋아 언니의 코치(이시우)를 찾아갔고, 클럽도 언니랑 같은 걸 쓴다. 전지훈련도 같이 갔다”고 말했다. 고진영이 서희경을 따라 했으니, 결국 박현경은 서희경을 따라 한 셈이다.

박현경은 서희경과 14년 차다. 잘 몰랐다. 서희경이 3연속 우승 등 한 시즌에 5~6승을 했다는 말에 박현경은 “정말요”라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서희경이 친구 홍란의 우승 재킷을 입어본 뒤 3연승 한 일화를 들려줬다.

박현경은 “내게는 진영 언니가 행운의 재킷”이라고 받았다. 이어 “난 유리멘털이었다. 위기가 되면 바사삭 부서졌다. 그런데 지난 해 언니와 함께 전지훈련 한 뒤 달라졌다. 요즘은 친구들이 ‘너 고진영 언니 같다’고 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진영과 박현경은 지난해 함께 전지 훈련한 선수 몇몇과 함께 여행 계 모임을 한다. 고진영이 회장, 박현경이 부장이다. 박현경은 “나도 두 번 우승했으니 진급시켜 달라”고 농담을 했다.

고진영은 “성적에 따라 돈을 내 여행 가는 모임이다. 내가 제일 많이 내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대회에 못 나가고, 현경이가 잘한다. 현경이가 낸 돈으로 여행 가게 생겼다”며 웃었다. 고진영이 “현경아, 우승 두 번인데, 아직 통장에 입금이 안 됐다”고 눈치를 줬다. 박현경은 “바로 입금할게요”라고 대답했다.

서희경은 “내가 뛸 당시는 컷 타수가 4~5오버파였다. 요즘은 이븐파가 기본이다. 또 ‘어떻게 저런 데 꽂아놨나’ 싶은 핀 위치에, 전장도 길어졌는데, 스코어는 라운드 당 2타 정도 적어진 것 같다. 내가 만약 지금 뛴다면 경쟁력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진영이 “언니는 지금 쳐도 1등 할걸”이라고 덕담하자, 서희경이 “에고, 체력이 안 된다. 13번 홀 이후는 그늘집에서 막걸리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웃었다.

자연스레 결혼 얘기가 나왔다. 선수로 뛰던 2013년 결혼한 서희경은 “결혼 후에 운동하든, 전업주부를 하든, 결정을 존중하는 남자가 좋다”고 조언했다. 박현경은 “아버지가 ‘서른 전에는 결혼 안 하는 게 좋다’고 하시더니, 우승 두 번 하고 ‘남자 친구 사귀어도 돼’라고 묻자 ‘알아서 하는 거’라고 하셨다. 연애도 성적이 좋아야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서희경, 박현경, 고진영. 우상조 기자/20200718

서희경, 박현경, 고진영. 우상조 기자/20200718

서희경은 “선수 시절에는 부모님이 나무 뒤에 숨어 있어도 다 보였다.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고진영은 “늘 부모님 실망할까 봐 엄청 신경 쓰였다. 요즘 무관중 경기라서 부모님들 경기장에 못 오시니 마음 편히 경기하는 선수들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현경은 “나는 아버지가 캐디를 하셔서 항상 붙어 있어 무관중 경기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그러면서도 “프로 출신 아버지에게 얼마나 혜택을 받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자다. 세계 1위로 한창 잘 나갈 때 대회가 멈춰섰다. 고진영은 “아쉽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해 큰 경기를 여러 개 치르면서 지쳤고, 휴식이 필요했다. 다양한 책도 보고, 사이클도 타면서 힘을 기르고, 새로운 골프 스윙을 익히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현경을 향해 “내가 있을 때 미국에 와라, 확실히 챙겨줄게”라고 말했다.

서희경은 “선수를 평생 할 수는 없다. 인생에는 더 큰 미래와 행복한 날들이 있다. 지금은 연습 과정이라고 생각해라. 선수 시절, 나는 연습 때 다른 선수와 말하지 않으려고 연습그린에서 일부러 이어폰을 끼는 등 벽을 쌓고 살았다. 돌이켜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경쟁자와 함께 성장하는 게 좋다. 두 사람 다 어울려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