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영순씨(43)는 몸이 찌부둥하면 동네 주부들과 어울려 찜질방을 찾는다.담소를 즐기며 사우나도 하고,원적외선 게르마늄으로 만들었다는 불가마 앞에서 한바탕 땀을 흘리는 일을 반복하면 온몸의 피로가 쫙 풀리는 듯 하단다.
“점심 때 식당에서 찹쌀 옹심이가 들어간 미역국을 먹고 입가심으로 식혜를 먹고 나면 그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찜질방은 제가 유일하게 누리는 사치인 셈입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김지영(32·인천 연수동)씨는 해수탕 예찬론자.“목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최근 목욕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며 “서울서 친구들이 오면 먼저 해수탕부터 찾는다”고 말했다.
이태리 타월과 고무 바가지로 대변되는 동네 목욕탕은 요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대신 고급화·대형화된 목욕탕과 찜질방·한증막 등이 각 동네마다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주차장은 물론이고 안에 식당과 헬스·사우나를 함께 갖추는 것은 기본.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탕을 갖추고 있는가도 목욕탕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요소다.증기탕·머드탕·한약탕·옥돌탕·소금탕 등 이름도 가지가지다.‘00불가마’를 비롯한 찜질방도 이런 다양한 목욕 문화의 하나다.게르마늄·맥반석·원적외선·옥 등 몸에 좋다는 것들로 만들어진 불가마 찜질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목욕탕이나 찜질방은 이제 현대인의 새로운 휴식 공간이 됐다.가족이나 단체 모임의 장소로,그리고 병원·식당·전통 찻집·건강상담소,때로는 여관의 역할까지도 대신한다.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복합공간인 셈이다.
저녁 시간 서울 반포의 ‘해모수 불가마’에서는 퇴근길의 샐러리맨은 물론 근처 상가 직원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유명하다.퇴근 후 이곳을 가끔 찾는다는 직장인 박인철(35·서울잠원동)씨는 “가격이 비싸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사우나와 불가마를 하고 온돌바닥에서 자고 나면 피곤이 확 풀린다”고 말한다.
인터넷 마케팅 업체인 에브리존은 지난해 송년회를 찜질방에서 가졌다.술로 지새는 보통의 망년회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서로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동창 모임은 훨씬 흔한 일이다.주부 권형순씨(42·서울반포동)는 여고 동창생들과 지난달 모임 장소로 찜질방을 선택했다.아침에 모여 점심 먹고 사우나하고 차 마시며 실컷 수다를 떨다가 저녁이 다 돼서야 헤어졌다.
건강 때문에 찜질방을 찾는 사람들은 아예 열성파가 된다.71세의 이씨 할머니는 “몇년 동안 병원과 한약방을 다녀도 낫지 않던 무릎이 찜질방의 맥반석 불가마 때문에 좋아졌다”며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찜질방을 찾는다.
이런 새로운 풍경을 이끌어낸 것은 시설과 서비스의 변화가 한 몫을 했다.남녀 가리지 않고 티셔츠·반바지를 입고 공동 휴게실에서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새로운 목욕 문화다.
최근에는 부부싸움을 한 주부들이 찜질방을 찾기도 한다.최근 찜질방을 찾았던 박복남(51·서울 청담동)주부는 “아예 아이까지 데리고 나와 3일째 기거를 하는 주부를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잦은 찜질방은 한번 가는데 5천∼1만원하는 비용 때문에 가계부에 적잖은 부담이 된다.하루라도 찜질방을 빠지면 허전하다는 주부 이정숙씨(53씨·일산시)는 “다섯장·열 장씩 쿠폰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할인을 받지만,찜질방을 계속 갈 수도,안 갈 수도 없어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이런 고급·대형화에 밀려 소규모 영세 목욕탕이 고전하거나 퇴출당하는 것도 새로운 풍속도.N맥반석에 근무하는 회사원 김씨는 “대형 자본으로 헬스와 사우나·찜질방 등 고급화된 복합공간은 번성하고,대신 수많은 영세 사업자들은 계속 문을 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