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주부의 '꼬마일기'] "눈높이로 아이 바라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2001년 ○월 ○일
오늘은 밖에 나갔다 오니 엄마가 내 책상을 다 뒤집어 놓으셨다.

책꽂이 위에 놓여 있는 종이며, 책.노트와 장난감들을 꺼내 놓으셨다. 너무 슬펐다.

엄마는 내 책상이 지저분하다고 하신다. 책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그린 그림, 디지몽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는 파일꽂이가 두개 있는데 엄마는 그걸 제일 지저분하다고 하신다.

조금만 늦게 왔어도 엄마는 그걸 다 버리셨을 거다. 그것을 정리하고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엄마가 물으신다.

"너 엄마 밉지?"
"아니. " (속으로는 굉장히 미웠다) .
"엄마가 싫을 때가 있긴 있지?"
"응…아니. "
"엄마가 언제 싫어? 말해봐. 그래야 엄마도 안그러지."
"없어. "

엄마가 나가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언제 엄마가 미운지.

- 동생이 내가 좋아하는 것 달라고 떼쓰는데 나보고만 양보하라고 할 때
- 만화 다 보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끝나기도 전에 공부하라고 할 때
- 엄마도 짜증 나는 소리로 말하면서 나보고 짜증 내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때
- 아침에 밥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으라고 할 때
- 불편한 옷을 멋있다고 자꾸 입으라고 할 때'
- 동생이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나보고 치우라고 할 때'
- 난 열심히 했는데도 받아쓰기 틀렸을 때 정신 안차린다고 혼낼 때'

굉장히 많았다. 근데 언제 엄마가 좋았더라?

- 장난감 모을 때 나보다 더 열심히 종류를 챙기실 때
- 맛있는 거 차려주실 때
- 밤에 손잡고 잘 때

또 없나? 그런데 종류를 세어보니 싫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럼 난 거짓말쟁이인가. 그럼 엄마가 싫어? 좋아? 라고 물으면 당연히 '좋아' 인데 왜 그럴까.

궁리해보니 싫을 때 엄마 점수가 1점이라면 좋을 때 점수는 5점은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대답은 항상 '좋다' 인가 보다.

'그래도 엄마는 좋다' 는 결론을 내리고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엄마는 동생을 안고 소파에 누워 잠이 드셨다.

아이구 엄마 옆에 좀 앉아보려고 했더니 그놈의 동생 때문에 또 못하게 됐네.

김지희 주부

▶가정경영연구소 홈페이지(http://www.home21.co.kr)에 연재 중인 김지희 주부의 '꼬마일기' 의 일부 내용.

김씨는 초등학교 2학년생과 다섯살인 두 사내아이의 엄마며 용화여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맞벌이 주부.

김씨는 "아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말하는 꼬마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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