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아이 사랑] 3. 홀로 집 지키는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둥둥 쿵 짝짝 챙 두기 둥둥…. "
일요일 오후 대전 한신코아백화점 드럼 강습실은 김유숙(40.한국자원연구원) 박사와 그의 큰 아들 김형준(15) 군이 두드리는 드럼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매주 한시간쯤 신나게 드럼과 씨름하고 나면 한 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모자간의 정은 더욱 돈독해진다.

김박사는 "형준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목에 걸어주는 집 열쇠를 팽개치고, '나 홀로 집' 에 들어가기 싫어해 부부가 고민도 많이 했다" 고 말했다.

이러한 아들의 돌출 행동을 본 뒤김박사 부부는 변신을 했다.
주말의 모든 약속을 파기하고 가족 프로그램을 다시 짠 것.

이들 부부는 토요일엔 단소를 배우기 위해 사설강습소를 찾고, 둘째 예준(7) 과 함께 연극이나 영화관을 다닌다.
물론 평일 퇴근 뒤에는 그날 아이들의 일과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도 김박사 부부의 중요한 일상이다.

김박사는 "부모와 같이 있으면서 '방목' 되는 아이들보다 종일 떨어져 있더라도 집중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받는 자녀들이 바른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며 "가족프로그램 실천 이후 아이들 키우는데 자신감을 얻었다" 고 피력했다.

'양보다는 질. '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 사랑' 이 남다르다.

종일 부모와 같이 지내는 아이들 부럽지 않게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밀도 높게 쏟아붓기 위해 다양한 노하우를 동원하고 있다.

저녁 시간에 간단한 가족 노래 부르기, 주말 역사기행, 철새 탐방, 컴퓨터 게임 같이 하기, 가족 홈페이지 만들기, 불우이웃 방문 등 생각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아이디어들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윤호열.9) 을 둔 간호사 이경순(서울 삼성동) 씨는 오후 8시쯤 집에 와 아들의 얼굴을 부비며 서로의 정을 나누는 것으로 '가정 일과 '를 시작한다.

그런 뒤 나란히 앉아 이불에 발을 넣고 위인 전기나 동화책을 같이 읽는다.
때로는 아이 숙제를 하기 위해 함께 인터넷을 뒤지고, 주말에는 서점과 일주일 먹거리를 챙기러 가족끼리 쇼핑을 한다.

육아를 엄마 몫인 양 나몰라라 하던 아버지들도 바뀌고 있다.
서로가 역할 분담을 하지 않으면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부가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승렬(39.서울 상계동) 씨는 하나뿐인 딸 영선(10) 이를 위해 지난 1년간 수도권 역사 탐방을 했다.

이씨는 고궁은 물론 홍릉.선릉 등을 돌며 딸에게 역사적인 사실을 이야기해주다 보니 이제 반(半) 역사 교사가 됐을 정도다.
올해는 백제 문화권을 탐방할 예정이다.

부인이 교사인 회사원 김창곤(서울 강남구 일원동.44) 씨는 중학생인 두 자녀들이 게임방을 전전하는 것을 보다 못해 스타크래프트 등 온라인 게임을 배웠다.

그런 뒤 퇴근 후에는 가족 네명이 집에서 게임을 하며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

김씨는 "부모와 공통 관심사가 생긴 뒤부터는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던 아이들의 생활태도가 아주 좋아졌다" 고 말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의 임영재(44) 운영위원장은 "맞벌이를 함으로써 얻는 사회.경제적인 이득보다 더 중요한 '자식 농사' 를 망치지 않으려는 노력들을 한다" 며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행사에 아버지가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아버지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는 생각에 모든 것을 돈으로 보상하려는 것처럼 위험한 발상은 없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백상빈(37) 교수는 "사랑 없이 비싼 물건이나 돈을 듬뿍 쥐어 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고 말했다.

맞벌이부부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잔소리보다 자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아이가 인터넷을 한다면 오늘 들어가본 사이트가 무엇이며, 내용이 괜찮았는지 등 구체적으로 관심을 나타내라고 백교수는 조언한다.

아이들이 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고 오락실이나 만화가게 등을 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부모와 사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이기숙(50) 교수는 "맞벌이 부부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국.공립 탁아시설(어린이집) 과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 확충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또 탁아소와 유치원의 역할 분담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세살 아래 영아들을 보살피지 않고 유치원처럼 '큰 아이' 들만 받아주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영아들을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를 맡기지 못해 친척과 이웃집으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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