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 런던 북부의 토텐햄 빈민가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이 흑인 소년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11세 때였다. 평소 동네 교회 성가대에서 찬송가를 열심히 부르던 라미를 눈여겨보고 있던 한 미션 스쿨이 그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런던대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개업한 라미는 2000년 6월 고향인 토텐햄에서 실시된 보궐선거에 출마, 28세의 나이에 의원에 당선됐다.
노동당 소속인 라미는 그후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을 거쳐 우리의 법무장관에 해당되는 헌법부(Dept., Constitutional Affairs)의 수장에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그는 자신의 출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쑥스러운 표정으로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라미 장관은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지가 되려면 법률시장부터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동북아의 금융센터가 되려면 국제적인 법률 서비스가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라미 장관은 "중국에는 이미 1백9개의 외국 법무법인이 진출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정부가 좀더 자신감을 갖고 법률시장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