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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과 아베, 그만 싸우고 새 리더에 화해 찬스 넘기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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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문제 전문가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75·전 아사히신문 주필)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API) 이사장은 한·일간 갈등에 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적어도 한·일관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현재 상황을 보텀 라인(bottom line·최저선)으로 유지하도록 양국 정치 리더십에 꼭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출 규제 1년…후나바시 요이치 인터뷰 #"현재 한·일관계 보텀라인으로 삼아 관리" #"아베, 국가주의자 맞지만 배제주의 아냐" #"중국과의 균형 위해 한국 역할 중요시" #"한·일, 이웃 나라로 코로나 협력 필요" #"美와 北 안 움직여, 文샤인은 실패"

지난해 10월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할 당시 후나바시 요이치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 이사장의 모습. 지난 25일 인터뷰는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해 10월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할 당시 후나바시 요이치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 이사장의 모습. 지난 25일 인터뷰는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윤설영 특파원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 1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후나바시 이사장은 "어떻게든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고,코로나19 위기를 서로 극복해나간다면 (얼마 뒤) 양국 모두에 차기 정권이 들어설 것이고, 그때 새 리더들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찬스만큼은 남겨뒀으면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호소했다.

징용 문제와 관련해 양국 관계를 한층 더 악화시킬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달라는 것이다.

미·일 관계에 정통한 후나바시 이사장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방위분담금을) 일본에 80억 달러, 한국에 50억 달러까지는 요구하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과 일본이 더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응 문제와 관련,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자유 진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국민의 행동을 얼마나 기민하게 바꿀 수 있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며 "분열을 억제하며 사회 전체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군사력이나 경제력 못지않은 국력의 척도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5일 서승욱 윤설영 도쿄특파원이 화상으로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 신문 주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동화 일본지사장.

지난 25일 서승욱 윤설영 도쿄특파원이 화상으로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 신문 주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동화 일본지사장.

후나바시 이사장은 미국과 중국 특파원을 지낸 국제 문제 전문가다. 워싱턴지국장 시절 ‘제2의 일본대사’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28년간 ‘주필감이 없다’는 이유로 공석이었던 아사히신문의 주필을 2007년부터 정년퇴임을 한 2010년까지 맡았다. 인터뷰는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화상회의 형식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로 미·중 관계가 더 악화되고 있다.   
미·중 대립은 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에 의해 얼마나 심각한지가 새삼 분명해졌다. 마스크 문제만 해도 전 세계가 중국에 크게 의존해 온 것이 드러났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문제인데 이렇게 의존해도 좋은가'를 일본과 미국, 한국이 모두 느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기화되고 있다. 그동안 기후 변화와 팬데믹(세계적인 전염병 유행) 분야는 상호 의존을 심화시켰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젠 투쟁의 장이 돼버렸다.
지금까지는 아시아 국가들의 성적이 좋았다. 
'자유로운 개인'만의 자유주의, 추상적인 민주사회만으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를 지킬 수 없었다. 한국과 베트남, 대만에 일본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쪽에서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치고 단결하는 ‘강한 사회’가 기능을 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 정부는 B+ 또는 B, 일본 국민은 A였다고 본다. 일본의 검사 수가 적지만, 양성으로 판명되면 전부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법 규정 때문에 만약 검사를 많이 했다면 이탈리아처럼 의료가 붕괴했을 수 있었다.
코로나 분야에서도 한·일간 협력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협력하면 서로의 국력도, 국제적인 포지션(위치)도 더 커졌을 텐데 정말 유감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있기도 했지만, 일·중간엔 마스크도 오가고 어떻게든 관리가 됐다. 한·일도 코로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보통의 이웃 나라로 대화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부터 곧 1년이다. 징용문제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징용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양국 기업·국민이 자발적 기부금을 내는) 법안을 내면서 일본에서도 기대가 있었다. 지금은 야당이 다시 법안을 냈지만 한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는 움직임이 한국 입법부에서 나온 데 감사한다. 문 전 의장의 리더십에도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법안 처리가) 안 되는 것인데, 곧바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정권에 하나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현금화만큼만은…(피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로 가장 어려운 이 시기에, 적어도 한·일관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을 보텀 라인으로 하자고, 일본의 정치 리더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꼭 부탁하고 싶다.
지난 2014년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작고)와 대담하고 있는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 신문 주필. [중앙포토]

지난 2014년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작고)와 대담하고 있는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 신문 주필. [중앙포토]

아베 외교에 있어서 한국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나.  
아베 총리는 일본의 전후 리더 가운데 평가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다. (2012년 말 재집권부터) 8년간을 지켜보니 그가 내셔널리스트(국가주의자)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타국을 배제하고, 다른 민족을 나쁜 민족으로 만드는 내셔널리스트라기보다는 '일본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셔널리스트다. 아베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중국이고,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중·일 관계는 일단 안정시켰다. 일본 국내의 우익을 잘 관리하기 때문에 아베 총리에 대한 중국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아베 총리와 보수 정치인의 관점에서 보면 한·일 관계에선 위안부 합의가 무너진 데 대한 좌절감이 크다. 어느 정권과 합의해도 내정을 이유로 무너질 수 있어, 무서워서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 신문 주필. 윤설영 특파원

지난해 10월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 신문 주필. 윤설영 특파원

일본 정치가 중 한·일관계의 키맨은.  
역시 아베 총리다. 상대를 가장 잘 알고 있고 이슈도 다 머릿속에 들어있다. 외교란 '아슬아슬한 접점'을 찾는 것인데, 결국 마지막은 아베 총리다. 그 외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정도다.
아베 총리의 머릿속에 늘 한국이 들어있을까.  
단순히 위안부 문제나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전략적 측면에서 한국을 본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도 (미국·일본과) 같은 편에 서 있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한다. '우린 일·미 동맹을 유지할 테니 한국도 한·미 동맹을 확실히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 (지역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이 어떤 한국인지는 일본의 안보 전략에 너무나 중요하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어떤 의도인가. 
문재인 정권에 대해 ‘너희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금강산과 개성에 왜 진전이 없나, 미국은 경제 제재를 안 푸는 데 뭐 하고 있느냐’라는 (항의) 차원으로 본다. 볼턴의 회고록에도 나오지만, 미국 내엔 '경제 제재 해제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기류가 강했고, 지금도 경제 제재 해제라는 옵션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북·미 양쪽에 시도했던 ‘문샤인 정책’(문재인 정권의 햇볕정책)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 한국과 일본이 좀 편해질까.  
일본 내엔 ‘중국을 다루는 문제에선 트럼프가 더 쓸만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 쪽이 일본의 장기적인 국익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다자주의,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 동맹 유지 등에서 그렇다. 한·일이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지역의 안정도 지역 국가들이 협력해서 지켜야 하고, 미국에만 기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에선 바이든도 (트럼프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하다.

도쿄=서승욱·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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