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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8급 18명 모여봐야 18급” “잘못된 행동 돌려받을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바둑 18급짜리 18명 모여봐야 18급이지. 최소한의 죄의식조차 없어 보이는 천진난만함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교수들, 학생들 집단커닝에 일침 #“정직할 거라 믿었는데 정말 허탈” #“부정행위 의심자 너무 많아 참담”

지난 22일 서울대 경제학부의 A교수가 ‘오픈 채팅방 퀴즈 부정행위 시도에 대한 소회’라는 제목으로 학교 포털 내 온라인 강의실 공간인 온라인클래스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온라인 시험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행위를 재치있게 비꼰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치러진 온라인 시험에서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속속 적발되자 교수들이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 일침을 가하고 나섰다.

A교수는 ‘경제수학’과 ‘미시경제학이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매번 출석체크 대신 학생들에게 퀴즈를 풀어내도록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학생들만 이용 가능한 내부 게시판에 “집단지성으로 과제를 해결하실 분을 구한다. ‘먹튀’ 방지를 위해 말 안 하는 사람, 풀이공유 안 하는 사람이 보이면 강퇴 조치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제보로 이 사실을 알게 된 A교수는 온라인으로 매를 들었다. 그는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부정행위를 비판하면서 “문제가 어려우면 시간을 들여 해결에 애쓰거나, 포기하거나 해야 할 텐데 (부정행위자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토의하고 과제를 작성한다”며 “바둑 18급짜리 18명 모여봐야 18급이지. 귀신 씻나락 까먹다가 피자 한 판 만드는 수준의 오답을 낸다”고 꼬집었다. 이어 “참여자 이름을 모두 병기해 단일 과제로 제출하면 문제없지만, 단독 과제인 것처럼 제출한다. 그래서 비슷한 과제들을 모두 모아 F(낙제)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게 무슨 다윈상 수상자급 똥배짱인가 싶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윈상은 미국 기자 웬디 노스컷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어처구니없이 죽은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미국인인 고려대 국제학부의 B교수는 온라인클래스에 한국어로 “중간고사 부정행위자 3명에게 F학점을 주고 학교에 보고하겠다.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은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적었다.

같은 학교의 교양 프랑스어 수업을 담당하는 C교수도 온라인클래스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시험을 보기로 모의했다는 내용을 제보받았다. 여러분의 정직함을 신뢰해 비대면 시험을 보기로 했는데 정말 허탈하다”고 적었다. 결국 이 과목 시험은 대면 시험으로 전환됐다.

지난 3일 부정행위가 적발된 인하대 공대의 D교수는 온라인 게시판에 “참담하게도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학생의 수가 너무 많아 마음이 우울하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강의하고, 여러분은 정직하게 공부해 꿈을 키워가는 게 맞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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