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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선 박병석 선택은···문희상 "쓰리다" 했던 결단의 시점 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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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을 둘러싼 박병석 국회의장의 결단이 임박했다. 여야 협상이 진정을 이루지 못한 채 극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을 둘러싼 박병석 국회의장의 결단이 임박했다. 여야 협상이 진정을 이루지 못한 채 극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연합뉴스]

‘의회주의자’를 자처한 박병석 국회의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19일 본회의 연기를 선언하며 “소통과 대화를 통해 여야가 꼭 합의를 이뤄달라” 요청했음에도 원 구성을 둘러싼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면서다.

박 의장은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한 원칙으로 수차례에 걸쳐 ‘선 합의, 후 결단’을 강조했다. 지난 6일 여야 원내대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선 “이른 시일 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의장이 결단을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어느덧 ‘이른 시일 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박 의장은 재차 대화와 합의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이 3차 추경(추가경정예산)을 앞세워 국회의장의 결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4일 “3차 추경의 조속한 심사를 위해 의장이 (원 구성) 절차를 밟아달라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수차례 요청한 만큼 부담 속에서도 의장이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원 구성 시한을 오는 26일로 못 박은 것도 박 의장에겐 부담이다.

"속이 타들어 간다" 홍남기 부총리도 '결단' 요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국회를 찾아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해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가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국회를 찾아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해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가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3차 추경이 시급하다며 여당을 거들고 나섰다. 홍 부총리는 24일 박 의장을 예방해 “3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3주가 지났는데 아직 심사 착수가 안 돼 굉장히 안타깝고 속이 타들어 간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3차 추경 처리의 데드라인으로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7월 3일을 언급했다. 당과 정부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원 구성과 관련한 박 의장의 결단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의장은 여야 모두로부터 공격받는 상황이다. 그가 강조하는 신중함을 여당은 답답함으로 받아들인다.  “의장의 리더십은 외유내강이 아니라 외유내유”란 얘기도 나온다. 미래통합당도 6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단독으로 선출한 뒤 의장에 대한 기대를 상당 부분 거뒀다고 한다. 국회 공전 국면에서 박 의장이 코너에 몰린 셈이다.

코너 몰린 국회의장의 해법은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의사진행 발언 후 퇴장하고 있다. 이날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본회의에 불참했다. [뉴스1]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의사진행 발언 후 퇴장하고 있다. 이날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며 본회의에 불참했다. [뉴스1]

박 의장은 경색 국면을 해소하려면 통합당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물밑 설득에 주력하고 있다. 통합당 내 강경파 4인방으로 불리는 조경태·박대출·박덕흠·정진석 의원을 비롯한 중진 의원이 주된 설득 대상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이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가져간 상황에서 해법은 요원하다.

박 의장이 고민이 깊어지면서 지난해 비슷한 상황에 내몰렸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사례가 회자된다. 당시 문 의장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에서 안건의 상정 순서를 바꾸면서까지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평생 의회주의자로 살아온 그에게 오점이 된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문 의장은 지난 5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협치를 강조하던 국회의장으로서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처리 했다는 점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가슴 쓰린 날이었다”고 토로했다.

다만 여야가 팽팽한 균형을 이뤘던 20대 국회와 여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21대 국회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이 176석의 힘을 다 발휘할 경우 모든 법과 예산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의장은 여야 힘의 균형 자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최대한 야당의 입장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린 듯하다”며 “야당이 끝끝내 협상을 거부할 경우 상임위원장을 11:7로 임의 배분하는 ‘강제 배려’의 형태로 합의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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