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위대 강제 해산…트럼프 열받게 한 'BHAZ(흑인자치구)'

중앙일보

입력

2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긴 트윗은 워싱턴DC의 시위대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누구든 어떤 기념물이나, 동상 등 연방의 자산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사람은 즉시 체포해 최대 1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연방정부에 권한을 부여했다."

"이번 조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고 소급 적용할 수 있다. 예외는 없다."

바로 전날 라파예트 광장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하던 수백 명이 경찰에 강제 해산됐다. 이 중 일부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 동상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리려던 참이었다.

현장에 있던 워싱턴포스트(WP) 기자에 따르면, 경찰은 최루액을 뿌리며 방패로 밀어붙였고, 시위대는 간이 의자로 경찰을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며 밀려나고 있었다. WP는 난투극이 펼쳐지는 혼돈의 시간이었다고 묘사했다.

이 밤이 지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시위대)을 빠르게 해산시켰다"며 "많은 수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트윗에 남겼다.

22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라파예트 광장의 시위대는 해산됐지만 앤드루 잭슨 대통령 동상에는 여전히 이를 끌어내려던 밧줄이 매달려 있다. 뒤로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이 보인다. [AFP=연합]

22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라파예트 광장의 시위대는 해산됐지만 앤드루 잭슨 대통령 동상에는 여전히 이를 끌어내려던 밧줄이 매달려 있다. 뒤로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이 보인다. [AFP=연합]

갑자기 대통령이 '10년 형' 기준 만들 수 있나 

그런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갑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을 10년 형에 처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NN에 따르면 이미 연방법에 이러한 공공기물의 파괴(vandalism)를 금지하면서 최대 10년 형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명령은) 이미 존재하는 법을 더 강화하자는 차원이며 더 통일된 방식으로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화나게 했나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를 해산하면서까지 방문한 세인트존스 교회는 이후 줄곧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204년 전 지어진 이 역사적인 교회 기둥에 누군가 파란 스프레이로 "B-H-A-Z"라고 써놨다.

"Black House Autonomous Zone"의 약자로, '흑인 자치구'라는 뜻이다. 백악관 바로 앞에 시위대가 통치하는 지역을 만들었다는 표현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서 "내가 당신들 대통령인 한 워싱턴 DC에 '자치구'는 없을 것"이라며 "만약 만들려고 한다면 심각한 물리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이 트윗은 트위터 측으로부터 '숨김' 처리를 당했다. 누군가를 위협하는 내용이라 트위터의 운영원칙을 위반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23일 "자치구를 만드려고 하면 심각한 물리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트위터 측으로부터 '숨김' 처리됐다.

23일 "자치구를 만드려고 하면 심각한 물리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트위터 측으로부터 '숨김' 처리됐다.

동상을 둘러싼 전쟁은 이제 시작 

시위대가 둘러싼 곳이 앤드루 잭슨 대통령 동상이라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 7대 대통령인 잭슨은 20달러 지폐에 얼굴이 그려진 미국 독립전쟁 영웅이다. 하지만 백인우월주의자였고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을 가차 없이 몰아냈던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자신의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하우스에 앤드루 잭슨 미국 7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내걸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자신의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하우스에 앤드루 잭슨 미국 7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내걸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로이터=연합]

지난주 퀴니팩대가 남부연합 인사들의 동상을 없앨지, 그대로 둘지 여론조사를 했다. 52%가 제거에 찬성, 44%가 반대했다.

없애자는 의견이 과반이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동상을 둘러싼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전했다.

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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