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조선 중기 회화 특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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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에서 조선 중기는 변혁과 혼란의 시기였다고 미술사가들은 말한다. 조선 전기의 그림과 글씨가 왕조의 건국 이념으로 중국에서 들여온 주자성리학을 바탕으로 해 중국풍이 짙었다면, 후기의 서화(書畵)는 우리의 고유 이념인 조선성리학을 뿌리로 해 조선의 고유색이 두드러졌는데, 중기는 그 사이에 낀 과도기였기 때문이다.

머리는 앞서가면서도 손이 따라주지 못한 조선 중기의 미술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예술가의 고통과 진통을 보여 준다.

해마다 봄.가을로 정기전을 열어 우리의 전통미술을 정리해온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예순 다섯 번째로 마련한 전시회 '조선 중기 회화 특별전'은 조선 전기 말과 후기 초를 잇는 이 환절기의 점진적 문화변이 과정을 그림으로 살피는 자리다. 12일부터 26일까지 1~2층 전관에 1백20여 점 작품이 빼곡히 나온다.

사임당 신씨(1504~51)로부터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까지 50여명 사대부 화가들과 화원들의 일품은 4백여년 전 이 땅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을 다시 풀어놓는다.

간송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조선 전기와 후기의 분기점을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율곡 이이(1536~84)의 제자들이 주동이 되어 성공시킨 혁명이었던 인조반정 이후부터 문화 전반에 조선고유색이 퍼져나가 진경시대(1675~1800)를 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조선 중기의 그림들에는 전기의 중국풍이 남아있으면서도 후기의 진경풍을 내다보게 하는 양식의 파괴와 단순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사임당 신씨가 그린 '맨드라미와 도라지' 는 세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추상성이 도드라져 중기의 특징인 함축과 생략의 단순함을 예고하고 있다.

또 양송당(養松堂) 김시(1524~93)가 사생한 소는 중국 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한국 소의 모양새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전기 문화의 노쇠함과 후기 문화의 미숙함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선조 임금의 사위였던 신익성(1588~1644)이 남긴 '시냇가 산자락에 한가롭게 살다(溪山閒居)'는 조선의 풍경을 담으려 애쓴 점이 돋보이는 귀한 작품이다.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전통적인 산수 풍경을 하나의 상투적인 틀 속에서 관념적으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이 그림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적 풍경을 서정적으로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이나 분위기도 우리의 향촌 모습과 가까이 닿아있는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중기 미술의 특성을 함축한 또 한 점의 그림은 공재 윤두서의 '바위에 기대 달을 보다(倚岩觀月)'이다. 세상을 등진 듯 돌아앉아 바위와 한 몸이 된 고사(高士)는 전환기의 선구자로 18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길을 연 공재 자신의 초상으로 비친다.

전시와 함께 나온 '간송문화(澗松文華)'에 '문인화 삼절'이란 논문을 쓴 백인산 상임연구위원은 "혁신과 위기, 그리고 극복으로 이어지는 조선 중기 사회 문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초창(初創)의 건실성과 역동성, 절체절명의 위기가 주는 절박함과 비장함, 이를 극복해낸 자신감 등이 이 시기 문인들의 보편적 정서였다"고 분석했다. 무료. 02-762-0442.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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