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도 벗어난 검찰총장 내몰기…권력 수사 왜곡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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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권의 ‘윤석열 검찰총장 흔들기’는 상식과 정도에서 크게 벗어난다. 단순히 정치 공세 차원을 넘어 법에 보장된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훼손할 위험성마저 엿보인다.

거대 여당 “퇴진하라”며 노골적인 압박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 보장’ 정리해줘야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며칠 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제가 윤석열이라면 벌써 그만뒀다”며 공개적으로 총장 사퇴를 압박했다. 대검 감찰부가 맡았던 한명숙 전 총리 수사팀의 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윤 총장이 최근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이첩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검 감찰부가 직접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두고 설훈 최고위원은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며 문제 삼았다.

겉으로는 윤 총장의 사건 배당을 비판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여권의 교묘한 ‘윤석열 흔들기’라고 검찰 내부에선 불만을 토로한다. 뇌물 수수 혐의로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여권이 윤 총장을 걸림돌로 여겨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권의 윤 총장 사퇴몰이 배경에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 제동을 걸고 수사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윤 총장은 청와대의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 당시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감찰 무마 의혹,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연루 의혹 사건 등을 진두지휘해 왔다.

여권의 난폭한 질주는 지난 총선에서 공룡 여당(176석)이 등장하면서 예고됐다. 범여권 인사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되면 “윤 총장 부부가 수사 대상 1호가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급기야 제1 야당을 배제한 채 구성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윤석열 죽이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르며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조국 전 민정수석의 불법과 비위 의혹이 불거지면서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한 윤 총장을 여권은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유리할 때는 내 편이고, 불리할 때는 적이라는 편향된 인식을 드러냈다.

검찰청법(제12조 3항)에 검찰총장 임기는 2년이다. 정치권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있게 일하라는 독립 보장 장치다. 이 장치는 최대한 존중해야 마땅하다. 미래통합당 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는 “윤 총장에 대한 정권의 공격이 이성을 잃었다. 제거 시나리오가 가시화하고 있다. 대통령의 침묵은 제거 시나리오의 묵인인가. 신임하든지, 제거하든지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마침 오늘 문재인 대통령 주재 반부패정책협의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는 추 장관과 윤 총장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불필요한 논란에 교통정리를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