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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역차별""대학마다 달라 혼란" 고3 '구제안'에 우려 커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고3 학생들이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뉴스1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고3 학생들이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뉴스1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6월 모평’, 18일 예정)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한 일반고 3학년 김모(18)양은 마음이 착잡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개학이 연기되고 등교수업 대신 원격수업으로 공부했는데, 벌써 시험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6월 모평은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하고 재수생도 함께 치르는 시험이라 수험생 사이에선 ‘미니수능’이라 불린다. 김양은 “고3들이 등교 안 하고 집에서 부실한 온라인 수업 듣는 동안 재수생은 꼬박꼬박 학원에 다녔을 테니 격차가 클 것 같다. 주변에는 벌써 ‘올해 재수각’(재수할 느낌)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 코로나 피해 본 고3 구제책 마련

김양처럼 코로나19로 학사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고3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대학들이 대입 요강을 변경하는 등 구제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상당수 대학이 대책을 마련했거나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교육부는 대학별로 다음달까지는 고3을 배려하는 입시 대책을 내놓을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대학은 물론 입시전문가, 현장 교사들은 “현재 같은 방식의 전형 개편은 수험생의 혼란을 키우고,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산=뉴스1) 여주연 기자 =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고3 학생들이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2020.5.21/뉴스1

(부산=뉴스1) 여주연 기자 =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고3 학생들이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2020.5.21/뉴스1

14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들은 고3 구제책으로 수능 최저학력기준 완화, 비교과 반영 항목 축소 같은 방식을 두고 고민 중이다. 지난 9일 코로나19에 따른 대입전형 변경안을 내놓은 연세대는 올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재학생‧졸업생 모두 고3 비교과활동 중 ‘수상경력‧창의적체험활동(창체)‧봉사활동’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공교롭게도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고3이 입시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대학별로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공언한 날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서울대 수능 최저 완화, 연세대 비교과 축소 

서울대의 고3 구제 방안은 2021학년도 대입 수시 지역균형선발(지균)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하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수능 국어‧수학‧영어‧탐구 중 3개 영역이 2등급 내에 들어야 최종 합격할 수 있었는데, 이를 3등급 이내로 낮췄다. 또 정시 일반전형에서 교과 외 항목인 출결‧봉사활동으로 감점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 대입 어떻게 되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올해 대입 어떻게 되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고려대는 대입에서 비대면 녹화 면접을 하고, 비교과활동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정성평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앙대는 수시 논술·교과전형 봉사실적 기준을 25시간에서 20시간으로 줄였고, 성균관대는 오는 7월 시작되는 재외국민‧외국인전형에서 어학시험 자격 기준을 폐지하기로 했다. 경희대‧이화여대 등도 고3 구제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3 구제책으로 또 다른 형평성 문제 생길수도

하지만 이런 대책은 또 다른 형평성‧공정성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입 학종에서 비교과를 반영하지 않거나 축소하면 학생부를 잘 관리해온 재학생‧재수생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진다.

또한 올해 고3을 배려하면 현재 고1‧2 학생이 대입을 치를 때 비교과 평가 방식도 변경이 불가피 해보인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장은 ”수시모집을 두세 달 앞두고 전형요소를 바꾸면 학생 간의 또 다른 유불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비교과를 준비한 학생도 있을 텐데 이를 반영하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차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대전 유성구 도안고등학교에서 열린 국립한밭대학교 입시설명회에서 고3 학생들이 입학전형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5일 오후 대전 유성구 도안고등학교에서 열린 국립한밭대학교 입시설명회에서 고3 학생들이 입학전형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이같은 '고3 구제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학이 내놓는 방안이 성적과 직접 관련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재수생보다 불리한 현재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경쟁이자 상대평가인 입시의 특성상 한 쪽 부담을 줄이면, 다른 부담이 커지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예를 들어 각 대학이 발표한 개편안을 적용하면 서울대 지균은 수능 영향력은 줄지만 비교과가 더 중요해졌고, 연세대는 고3 수상경력‧창체‧봉사활동을 제외한 비교과의 영향력이 커지는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대학별로 구체책의 내용이 달라 학생‧학부모 혼란을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를 들어 A대학은 비교과를 반영하고, B대학은 안 할 경우 수험생 입장에선 어떻게 대입을 준비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학생‧학부모의 혼란을 줄이려면 교육부나 대교협이 최소한의 방향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종은 정성평가라 현재도 코로나19의 영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데, 굳이 수시모집을 2~3개월 앞두고 전형요소를 바꿀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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