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돈 빨아들이는 싱가포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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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싱가포르가 코로나19 이후 폐쇄했던 국경을 다시 개방하기로 했다. 8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이 탑승을 위해 체크인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싱가포르가 코로나19 이후 폐쇄했던 국경을 다시 개방하기로 했다. 8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이 탑승을 위해 체크인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에서 갈 곳을 잃은 돈이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중앙은행 격인 통화청(MAS)은 5일(현지시간) “4월 싱가포르 비거주자 예금이 1년 전보다 44% 급증해 62억 싱가포르 달러(5조36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유입자금 2.3조원, 1년새 4배로 #싱가포르 새 금융허브 가능성 #잇단 시위사태로 홍콩 지위 흔들 #블룸버그 “한·일은 대체지 못 돼”

싱가포르 외화예금도 같은 기간 거의 4배나 뛰어 27억 싱가포르 달러(약 2조3345억원)에 달했으며 올해 1~4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200% 가까이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홍콩의 자금이 싱가포르로 유입됐다”고 분석했다. 미·중 갈등의 첫 격전지가 된 홍콩에 불안감을 느낀 자금이 이웃 중화권 국가 싱가포르로 유입된 정황이 구체적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홍콩발 자금이 싱가포르에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중반부터라고 FT는 전했다.

홍콩 국가보안법이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기 이전인 지난해부터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로 정국 불안이 가중되자 자금 유출이 서서히 시작됐다. 지난달 중국 양회(兩會)에서 깜짝 통과시킨 홍콩 국가안보법은 결정타였다. 미국은 홍콩에 부여했던 경제 혜택의 근간인 특별지위를 거두겠다고 응수했다. 8일 현재 미국은 특별지위 박탈을 실행하지는 않고 엄포만 놓고 있는 상태지만 불안정성이 커졌다. 포천(Fortune)지는 6일 “홍콩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의 매력을 잃었다”고 전했다.

갈수록 하락하는 홍콩 경제성장률

갈수록 하락하는 홍콩 경제성장률

싱가포르 소재 다국적 기업에 근무했던 A씨는 익명을 전제로 “지난해부터 홍콩에 본부를 둔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옮길지 고민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며 “실제 기업인들 이주도 늘었는데, 그 때문에 싱가포르 내 국제학교엔 대기자들이 지난해부터 확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6일자)에서 “홍콩이 지정학적 폭풍에 휩싸였다”며 “홍콩이 계속해서 국제 금융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에 대해 “변압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는데,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와 중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정국 불안 및 홍콩에 대한 중국의 그립이 확고해지면서 이런 ‘변압기’ 역할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이를 두고 FT·이코노미스트 등은 “홍콩의 중국화(Chinatization)”라고 표현했다. HSBC 등 홍콩의 주요 기업과 기관, 금융 큰손들이 홍콩 안보법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 이런 변화의 대표적 사례다.

홍콩과 함께 범중화권에 속하는 싱가포르가 홍콩의 대체재 후보로 고려된 건 새롭지 않다. 2004년부터 재임 중인 리셴룽(李顯龍) 총리에서 비롯된 정치적 안정성과 언어 장벽이 없다는 게 싱가포르의 강점이다.

한국과 일본이 홍콩을 대체할 수 있을까.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7일 아시안타임스에 “한국과 일본은 홍콩을 대체할 수 없다”고 적었다.

일본에 대해 페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을 국제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고 나섰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잠재력은 있다”면서도 “높은 법인세와 경직된 노동시장, 영어 소통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과감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렵다”고 적었다.

한국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틈을 파고드는 게 현명하긴 하겠지만 일본의 문제점이 곧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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