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메시지 한글 파괴 걱정 ? 고학년 되면 표준말 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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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인터넷에 이어 부모의 걱정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바로 휴대전화지요. 최근 조인스닷컴이 네티즌 5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6%가 요즘 아이들의 휴대전화 사용 문화를 '중독'으로 보고 걱정스러워 했답니다. 과연 아이들이 휴대전화에 무작정 빠져드는 걸까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1까지 일곱 명의 아이들을 만나 요즘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 "중독이라뇨, 그냥 생활이에요"

"자꾸 '중독''중독'하지 마세요. 그냥 쓰는 거지 무슨 중독이에요. 우리가 휴대전화 중독이라면 옛날 사람들 보기에 요즘 사람들은 다 자동차 중독일걸요."

아이들의 휴대전화는 정말 멀티플레이어다. 카메라도 됐다, MP3도 됐다, 게임기도 됐다, 영한사전도 됐다, 노래방기기 리모컨도 됐다 별 걸 다한다. 지하철 노선표도 휴대전화로 확인한다. 아이들 생각엔 휴대전화로 전화만 걸고 받는 어른들이 안타깝다.

남학생들은 게임을, 여학생들은 문자를 좋아하는 경향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서울 D여고 1학년 선영(가명)이가 하루에 보내는 문자는 평균 100건 정도. 문자 한번 주고받는데 1분씩만 걸려도 하루에 100분은 휴대전화를 쳐다보고 있는데 쓰는 셈이다. 하지만 선영이는 "전화 한 번 길게 하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가지 않느냐"며 "문자 쓰는 게 도리어 시간 절약"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이 걱정하는 '한글 파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초등학생들은 '하이삼' '어댜' '걍' 등 통신용어를 사용하지만, 중3 정도만 되면 다시 표준말을 써요. 표준말이 더 예쁘니까요. 요즘엔 어른들이 더 줄임말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 "솔직히 공부엔 방해돼요"

휴대전화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던 아이들도 성적 이야기가 나오니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사실 공부엔 방해되죠."

수업시간엔 '램프-무음'으로 해두지만, 문자가 오면 궁금해서 확인하게 된다. "보는 데 몇 초 안 걸리잖아요. 선생님 눈치봐서 잽싸게 보죠." 답을 할 때도 많다. 자판을 다 외웠기 때문에 책상 밑에 숨겨두고 얼굴은 앞을 보면서 얼마든지 문자를 보낼 수 있다.

혼자 공부할 때도 몇 번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흐름이 끊겨 집중하기 힘들다. 그래서 시험기간엔 전원을 꺼두거나 서비스를 정지시켜 두는 아이들도 꽤 있다. "정지했다 풀려면 부모 동의서도 내야 하고 번거로워요. 그래도 그게 제일 확실하니까 시험기간 1주일 전부터 시험 끝날 때까지 정지시켜요. 생각 없이 쓰는 게 아니라니까요."

휴대전화 요금은 보통 정액제를 이용한다. 한 달 3만원 정도로 하면 문자는 월 3000건 정도 보낼 수 있고, 전화통화는 한두 시간 정도 가능하다. "그런데 게임이나 노래를 다운받거나 무선인터넷 쓰면 데이터 이용료가 엄청 비싸요. 노래 하나 다운받으면 8000원이에요. 처음엔 몰라서 애들이 많이 썼는데 요즘엔 다운받는 거 비싼 거 아니까 많이 안 하죠." 고등학생들 중에는 휴대전화 요금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 "휴대전화에 화풀이 마세요"

휴대전화가 아이들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징계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교에서 잘못하다 걸리면 무조건 휴대전화 압수예요. 수업시간에 휴대전화 사용하다 압수당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지각해도 복장이 불량해도 휴대전화 내놓으라시니… 휴대전화가 무슨 죈가요?"

아이들도 대책을 마련했다. 압수당할 때를 대비해 안 쓰는 옛날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기도 한다. 어차피 배터리는 빼고 내놓기 때문에 상관없다. "처음엔 배터리째로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문자까지 열어보고 또 혼내시고. 사생활 침해 때문에 요즘엔 배터리 빼고 드려요."

집에서도 휴대전화는 때때로 수난을 당한다. 성적이 떨어졌다며 휴대전화를 부숴버린 아버지도 있단다.

역으로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포상 수단으로 활용한다. "휴대전화를 바꾸고 싶을 땐 부모님께 먼저 제안해요. '이번에 성적 오르면 신형으로 바꿔주세요'라고요. 아마 대부분 그렇게 바꿨을걸요?"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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