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 '묻지마 폭행범'···경찰은 급했고, 법원은 절차 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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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났다가 검거된 이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났다가 검거된 이모씨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역에서 모르는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을 한 이모(32)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4일 법원에서 기각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 검거 당시 피의자 집에 들어가 긴급체포를 한 게 절차상 위법하기 때문에 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도주ㆍ극단적 선택 우려에 긴급체포 #철도경찰, 다시 영장 청구할 지 검토 #"묻지마범죄, 긴급체포 요건 완화 필요" #

이에 대해 국토부 산하 철도특별사법경찰대는 “법원 기각사유를 검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여죄를 포함해 수사하겠다”고 5일 입장을 밝혔다. 철도특별사법경찰대 관계자는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할 지, 다시 영장을 청구할지 담당 검사와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의자의 긴급체포를 두고 논란은 커지고 있다. 무리한 수사였는지 아니면 정당한 절차였는지 법원과 검찰·경찰 간의 의견이 엇갈린다. "제2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신속한 검거가 필요했다는 게 철도 경찰 측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집 문을 수차례 두드리고 전화를 했지만, 휴대전화 벨 소리만 울릴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며 “그동안 언론에 많이 나와 도주나 극단적인 선택까지 할 우려가 있어 불가피하게 체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의자 이씨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되풀이해 2차 피해 우려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서울역 범행 직전에도 지하철, 버스 등에서 다른 행인들에게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며 시비를 건 것으로 파악됐다.

 매년 묻지마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연합뉴스.

매년 묻지마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달리 법원은 전날 이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연 뒤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 측은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원과 주거지, 휴대전화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었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경찰이 영장도 없이 피의자 주거지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해, 긴급체포한 게 절차상 위법이라는 의미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남용할 것을 막기 위해 긴급체포에 제한을 두는 건 맞지만, 이 사안은 징역이 충분히 예상될 만큼 범죄의 중대성이 크다 보니 (긴급체포) 요건을 완화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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