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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도 못한 MS 부활, 그걸 해낸 나델라의 '줌' 정조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가 지난해 MS 연례 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가 지난해 MS 연례 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MS) 하면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만 떠올리기 쉽지만, MS의 구세주는 현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아 나델라(53)다. 그가 CEO에 취임했던 2014년은 MS의 침체기였다. 윈도우 체제에 집착하느라 애플ㆍ구글 등 신흥 주자에 정보기술(IT) 리더 자리를 내줬다. 2010년 시가총액 1위를 애플에 내준 뒤 내리막을 걸었다. 그러나 나델라 취임 후 약 4년 만인 2018년 시총 1위를 되찾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나델라 CEO를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면서 “IT 업계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던 MS가 그의 조용한 리더십 하에 놀라운 부(富)를 창출해냈다”고 평했다.

당시 나델라가 내걸었던 혁신의 주 무기는 클라우드였다. 자신의 기기뿐 아니라 외부 서버에 사진ㆍ문서 등을 저장하고 어디에서든 접속해 다운 받을 수 있는 데이터 저장고다. 그런 나델라가 최근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다. 원격 업무 시스템인 ‘팀즈(Teams)’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뉴 노멀’이 되면서 새로운 원격 업무 환경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기존의 화상업무 시스템인 줌(Zoom)과 슬랙(Slack)이 장악한 시장에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MS가 당신의 업무 컴퓨터를 놓고 줌ㆍ슬랙과의 대결에 나섰다”며 “MS는 팀즈를 자사 미래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긴다”고 보도했다. 이 새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 나델라 CEO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후 주요 기업의 CEO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회의하는 모습.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나델라 MS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후 주요 기업의 CEO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회의하는 모습.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나델라 MS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AP=연합뉴스

힘들 땐 시를 읽는다는 CEO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에서 태어난 전형적 인도인인 나델라는 10대 후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위스콘신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를,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1992년부터 쭉 ‘MS맨’으로 살았다.

나델라는 MS의 차세대 먹거리를 찾았을 뿐 아니라 기업 근무 환경도 바꿨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마이클 쿠수마노 경영학과 교수는 FT에 “나델라는 MS에 새로운 문화, 새로운 열정을 심어줬다”며 “MS는 이제 다시 일할 맛 나는 회사가 됐다”고 말했다. 나델라가 강조한 건 ‘공감’이다. 그가 날 때부터 공감의 달인이었던 건 아니다. 외려 반대였다. MS 입사시험에서 면접관이 “아이가 울고 있다. 어떻게 하겠나”라고 묻자 “911(미국의 119)에 전화를 걸겠다”고 답했다. 당시 면접관이 “먼저 안아서 달래줘야 하지 않겠냐”라며 “당신은 공감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한는 일화는 유명하다.

나델라에게 공감력을 가르쳐준 건 뇌성마비를 앓은 아들 자인이다. 두 딸 중 한 명은 학습장애를 앓고 있다. 이들을 돌보면서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게 됐다고 나델라는 여러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나델라가 2016년 경쟁사였던 리눅스를 향해 “MS는 리눅스를 사랑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협업을 제안한 것도 공감 리더십으로 풀이된다. MS는 이어 애플ㆍ구글과도 경쟁 아닌 협업을 택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모두에 사용 가능한 오피스 앱을 개발하면서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나델라도 사람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고향 인도의 시를 탐독하고, 인도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크리켓 경기로 스트레스를 푼다.

MS는 나델라의 '공감 리더십'과 혁신 덕에 재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MS는 나델라의 '공감 리더십'과 혁신 덕에 재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나델라가 MS팀즈를 발족시킨 건 2016년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새롭게 팀즈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경쟁사들에겐 달갑지 않다. 슬랙의 CEO인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WSJ에 “MS는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버터필드는 2016년 MS 팀즈 발족 당시 공개적으로 “드디어 경쟁이라는 걸 하게 됐네, 환영한다 MS”라는 비난조의 뉴스레터를 쓰기도 했다. 줌의 CEO인 중국계 에릭 위안 측은 WSJ에 MS의 관련 언급을 요청받았지만 “노코멘트”라고 답했다고 한다.

공감만 하나, 공격도 한다 

MS가 팀즈에 집중하면서 원격근무 관련 업계는 분기점을 맞았다. 나델라 CEO가 공감 및 공존의 리더십으로 인정을 받은 점은 있지만, 팀즈라는 신규 사업을 이끌어가는 상황에선 공격적 성향도 보인다. 슬랙과의 경쟁 구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슬랙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날, MS가 “팀즈 일일 사용자 숫자가 1300만명을 돌파했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WSJ는 “슬랙의 일일 사용자 숫자가 1000만명인 것을 염두에 두고 MS가 일부러 낸 자료”라며 “슬랙 측에선 ‘MS와 우리의 집계 방식이 다르다’는 주장을 한다”고 전했다. 슬랙의 버터필드 CEO는 “MS가 슬랙의 고객과 투자자들을 빼내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분개했다고 한다. 이후 MS는 다시 자료를 냈지만 역시 팀즈가 슬랙을 앞선다는 내용이었고, 공교롭게도 이날 슬랙의 주가는 10%포인트 빠졌다.

그러나 중국인 CEO가 이끄는 줌에 대해 보안 문제가 계속 대두되는 상황에서 소비자 입장에선 팀즈가 반가운 게 사실이다. WSJ는 “줌이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반면, 줌을 통해 해킹을 하고 정보를 빼간다는 뜻의 ‘줌 폭탄(Zoombombing)’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팀즈가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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