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어제 청와대 회동에서 대화와 협치를 약속했다. 적절하고 의미 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여야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모습은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는 국민에게도 위안을 줬다는 평가다. 회동은 문 대통령이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망언을 사과한 것 등을 평가하고 덕담을 건네는 등 우호적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과거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문 대통령은 “협치의 쉬운 길은 대통령과 여야가 자주 만나는 것이다. 아무런 격식 없이 만나는 게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또 “20대 국회도 협치와 통합을 표방했으나 실제론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는 말도 했다. 정확한 상황 인식이며 바람직한 태도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 경제는 엄청난 충격파에 휘청대고 있다. 수출이 큰 타격을 받고 주요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고용·성장·물가 등 경제·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어제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1%에서 2.3%포인트나 내린 -0.2%로 전망했다. 11년 만의 역성장 전망은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렵다는 의미다.
국난을 수습할 국정의 두 바퀴는 정부와 국회다. 당장 21대 국회는 경제 회생을 위한 법적 지원, 3차 추경안, 공수처 출범 같은 산적한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 4월 총선으로 더불어민주당이 177석의 수퍼 여당이 됐지만 여당의 독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상누각의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제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에선 ‘민주당의 180석(양정숙·용혜인·조정훈 당선인 제명 전)은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55%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적절했다’는 답변은 32%였다. 이게 시중 민심이고 여론이다. 통합과 협치는 지금 선택이 아니라 갈 수밖에 없는 필수 코스가 됐다. 그래야만 발등 위에 떨어진 코로나 국난의 불씨를 끌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협치는 현란한 구호나 화려한 수사로 되는 게 아니다. 다수당이 소수를 끌어안는 포용을 보여야 신뢰가 싹트고, 그래야 협치가 가능해진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21대 국회 상임위원장 18석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압박하고 나서는 건 소탐대실일 뿐이다. 야당의 반발을 불러 원 구성 협상에 차질을 빚고 모처럼 형성된 대화 분위기마저 해칠 수 있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거대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시도를 비판해 무산시켰던 일을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야·정 대화의 정례화 일정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2018년에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구성을 합의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지 않았는가. 또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인 의혹에 대해 문 대통령이 끝내 침묵을 지킨 것은 옥에 티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의제라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진정한 대화요 협치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