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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여야 원내대표의 협치 약속,이번엔 지켜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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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어제 청와대 회동에서 대화와 협치를 약속했다. 적절하고 의미 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여야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모습은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는 국민에게도 위안을 줬다는 평가다. 회동은 문 대통령이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망언을 사과한 것 등을 평가하고 덕담을 건네는 등 우호적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과거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문 대통령은 “협치의 쉬운 길은 대통령과 여야가 자주 만나는 것이다. 아무런 격식 없이 만나는 게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또 “20대 국회도 협치와 통합을 표방했으나 실제론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는 말도 했다. 정확한 상황 인식이며 바람직한 태도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 경제는 엄청난 충격파에 휘청대고 있다. 수출이 큰 타격을 받고 주요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고용·성장·물가 등 경제·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빨간불이 켜졌다. 어제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1%에서 2.3%포인트나 내린 -0.2%로 전망했다. 11년 만의 역성장 전망은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렵다는 의미다.

국난을 수습할 국정의 두 바퀴는 정부와 국회다. 당장 21대 국회는 경제 회생을 위한 법적 지원, 3차 추경안, 공수처 출범 같은 산적한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 4월 총선으로 더불어민주당이 177석의 수퍼 여당이 됐지만 여당의 독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상누각의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

그제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에선 ‘민주당의 180석(양정숙·용혜인·조정훈 당선인 제명 전)은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55%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적절했다’는 답변은 32%였다. 이게 시중 민심이고 여론이다. 통합과 협치는 지금 선택이 아니라 갈 수밖에 없는 필수 코스가 됐다. 그래야만 발등 위에 떨어진 코로나 국난의 불씨를 끌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협치는 현란한 구호나 화려한 수사로 되는 게 아니다. 다수당이 소수를 끌어안는 포용을 보여야 신뢰가 싹트고, 그래야 협치가 가능해진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21대 국회 상임위원장 18석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압박하고 나서는 건 소탐대실일 뿐이다. 야당의 반발을 불러 원 구성 협상에 차질을 빚고 모처럼 형성된 대화 분위기마저 해칠 수 있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거대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시도를 비판해 무산시켰던 일을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야·정 대화의 정례화 일정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2018년에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구성을 합의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지 않았는가. 또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인 의혹에 대해 문 대통령이 끝내 침묵을 지킨 것은 옥에 티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의제라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진정한 대화요 협치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