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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 진술 믿을 수 없다"…故장자연 강제추행 무죄 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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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공개 증언자인 배우 윤지오가 지난해 3월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故)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눈물짓고 있다. [뉴스1]

고(故)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공개 증언자인 배우 윤지오가 지난해 3월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故)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눈물짓고 있다. [뉴스1]

고(故) 장자연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았던 전직 조선일보 기자 A씨의 무죄가 28일 확정됐다. A씨에게 무죄를 줬던 1·2심과 대법원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A씨가 장씨를 강제추행했다고 진술한 배우 윤지오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장씨가 추행당했다는 사실을 넘어 '윤씨가 이를 목격했다는 것까지도 강한 의문이 든다'는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2009년 무혐의 처분 뒤 2018년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재수사 권고로 9년만에 기소된 A씨. 법원은 왜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일까. 법원은 이 사건의 증거가 윤씨의 진술밖에 없었던 점, 그리고 그 윤씨의 진술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변경된 과정과 이유에 주목했다.

장자연 사건의 재구성 

사건은 2008년 8월 강남구 한 술집에서 열린 연예기획사 대표 B씨의 생일파티에서 시작됐다. 당시 자리엔 B씨와 전 조선일보 기자 A씨, 장씨, 윤씨, 전 금융당국 고위관계자 C씨 등이 참석했다. 장씨와 윤씨가 이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장씨가 테이블 위에서 춤을 췄다는 것은 법원도 인정한 사실이다.

故 장자연씨가 지난 45회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故 장자연씨가 지난 45회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신인배우였던 장씨는 이런 접대성 자리에 불려다니다 이듬해 3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윤씨는 장씨가 사망한 뒤 경찰에 다섯차례 출석해 당시 언론사 관계자가 장씨를 잡아당겨 무릎에 앉힌 다음 강제추행했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윤씨가 1차 경찰조사에서 밝힌 진술 중 일부다. 강제추행이 발생했다는 날부터 7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윤지오 경찰 1차 진술(2009년 3월 15일)

경찰관=피해자(장씨가)가 술좌석에서 여성으로서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성적인 모욕을 당한적이 있는가요?
윤지오=피해자가 테이블에 올라가 춤을 출 때 50대 초반으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신문사 사장님이 테이블 피해자 손목을 잡아 당겨 무릎에 앉게 하고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만지고 겉으로 가슴을 만져 피해자가 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뒤집힌 윤지오의 진술  

윤씨는 1차 조사를 시작으로 약 1달간 5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다. 윤씨는 앞선 1차 경찰 조사에서 처음 특정 언론사 대표 D씨를 언급한다. 이후 2차 조사(2009년 3월 18일)에선 D씨의 대표 명함을 제출하며 그를 피의자라 지목한다. 이후 윤씨는 3차 경찰 조사까진 피의자를 D씨라 주장했다. 하지만 D씨는 당시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윤씨는 4차 조사에서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며 진술을 뒤집고, 5차 조사에서 그 전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전 조선일보 기자 A씨를 피의자로 지목한다. 윤씨는 경찰이 제공한 A씨와 D씨의 동영상을 보고 A씨가 장씨를 추행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날 "동영상만으로도 A씨를 지목한 범인 식별절차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문에 나온 윤씨의 진술을 일부 발췌했다.

윤지오 1~5차례 경찰 진술 中

1차 조사=50대 초반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언론사 사장님이 장자연씨를 강제추행 진술.
2차 조사=윤씨, 해당 언론사 대표 D명함 경찰에 제출하며 피의자 특정. 피의자 인상 착의 40대 중반, 키 168cm. 체격은 보통 진술.
3차 조사=D씨가 장씨를 강제추행했다는 사실 구체적 진술.
4차 조사=피의자는 D씨가 아니라 번복. D씨 일본어 구사하지 않았고, 그런 진술 한 것은 당시 다른 룸에 있다 들어온 신문사 회장님(60대 이상, 165cm)이 일본 노래를 잘했기 때문.
5차 조사=(경찰의 법최면검사 이후) 경찰이 D씨와 A씨(전 조선일보 기자) 동영상 보여주니 A씨가 장씨를 추행한 사실을 알게됐다 진술.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증언자인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장자연 증언자, 윤지오 초청 간담회'에서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증언자인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장자연 증언자, 윤지오 초청 간담회'에서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법원은 윤씨의 진술이 이처럼 여러차례 바뀐 사실에 주목했다. 피고인(A씨)의 키가 177cm로 윤씨가 처음 지목한 언론사 대표와 체격 차이가 컸던 점, A씨의 당시 나이가 38세로 술집에 있던 다른 50대 남성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에서 윤씨가 A씨를 처음부터 지목하지 않은 사실도 지적했다.

"윤지오 피고인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실제 강제추행을 했다면 윤지오는 그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해 1차 조사 당시 추행범을 정확하게 진술할 수 있었을 것"이라 밝혔다. 5차 조사에서야 A씨를 지목한 윤씨의 진술 과정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윤씨가 처음 언급한 피의자의 인상착의와 기소된 A씨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법원은 또한 윤씨가 언론사 대표 D씨를 지목했을 당시 그의 인상착의를 인터넷 등과 경찰 조사에서 확인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진술이 변경된 4차, 5차 조사 전에도 그를 확인했을텐데 왜 이전까진 해당 진술을 유지했냐는 것이다. 윤씨가 A씨를 피의자로 다시 지목했을 때는 이미 D씨가 술집에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확인된 뒤였다. 법원이 장씨의 강제추행 사실을 넘어 윤씨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실까지도 의문을 제기한 이유다.

최나리 로앤어스 소속 변호사가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故장자연 사건의 증인 윤지오씨에게 후원한 500여명의 후원금 반환 소송 소장을 접수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최나리 로앤어스 소속 변호사가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故장자연 사건의 증인 윤지오씨에게 후원한 500여명의 후원금 반환 소송 소장을 접수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검찰은 무죄를 받은 A씨에 대한 항소와 상고를 하며 "윤지오의 강제추행 목격 진술은 자연스럽고 임의성이 있어 신빙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 지시 이후 A씨를 기소하며 윤씨를 별도로 조사하지 않았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지오의 진술로 기소된 사건이 윤지오 진술로 무죄를 받게됐다"고 말했다.

현재 캐나다에 있는 윤씨는 장씨에 대한 거짓 진술 의혹과 각종 후원금 문제 등으로 피소당한 상태다. 한때 윤씨를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라 보호했던 경찰은 윤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을 내렸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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