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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정부 감시 대신 정권 옹호” 86세대 성공 루트된 시민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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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미향. [뉴스1]

윤미향. [뉴스1]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입장에선 한·일 합의가 이뤄지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먹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게 한국 시민단체의 현주소다.”

학생운동 때부터 형성된 연대 문화 #86세대 이른 나이 시민단체 리더로 #운동가 권력투신, 현실참여로 미화 #시민운동 권력지향성 정점에 올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지낸 김경율(회계사) 경제민주주의21 대표의 이야기다. 김 대표는 25일 “정의연은 피해자를 위한 활동보다 자신들이 생각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했다”며 “‘시민 없는 시민단체’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시민단체가 정권을 옹호하고 권력을 얻기 위한 발판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에 대해서는 “회계비리 및 횡령 의혹 사건으로 간단히 도려내면 될 일이었다”며 “조국 사태처럼 ‘우리 편이면 무슨 잘못도 눈감아주는’ 386세대의 진영 논리가 시민운동의 본질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학생운동 당시 형성된 ‘연대’ 문화가 진영 논리로 승화했다. 다른 세대는 이해 못할 일들을 386세대는 당연히 여긴다”고 말했다.

386세대 내부에서 회계비리·입시부정 같은 명백한 잘못이 드러나도 감싸고, 성추행 사건에도 여성단체가 침묵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네트워크 위계’ 이론으로 설명한다. “386세대는 학연·지연·혈연의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원리를 터득해 시민사회와 국가를 점유하고 위계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주축인 386세대는 학생회·서클 등의 조직화 경험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운동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회 곳곳에 뿌리내렸다. 이 교수는 “소련 붕괴 후 대중운동으로 개종한 지식인들에 의해 시민단체가 주로 설립·운영됐다”며 “진보 성향이 압도적이며 수백 개의 분화된 이슈와 분야를 넘나드는 연대로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설명한다(『불평등의 세대』).

시민단체의 386세대 리더들은 함께 연대했던 정치·기업인 등과 서로 얽혀 있다. 이들은 함께 신자유주의 질서로 사회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른 나이에 리더 자리에 올랐다. 실제로 21대 국회는 60년대생(58%)이 가장 많고 100대 기업 이사진(2017년)도 60년대생(72.2%)이 압도적이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김상조·장하성처럼 시민단체 인사 다수는 현 정권의 요직에 올랐다. 윤미향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운동가들이 권력에 투신해 관직을 얻는 행위를 현실 참여로 미화한다”며 “시민운동의 권력 지향성은 현 정권에서 정점에 올랐다”고 했다. 권력과 시민단체가 가까워지면서 본령인 정부 비판은 둔화된다. 김경율 대표는 “(권력 진출은)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본래 목적에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시민단체를 ‘어용’으로 규정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민주어용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여성단체는 (이용수) 할머니 편에 서는 게 맞지 않느냐. 그런데 34개 여성단체가 일단 스크럼부터 짜고 집권여당의 당선자를 옹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엔 어용 단체·매체가 충성 경쟁하듯 극성을 부린다”고 지적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민운동의 정치화 현상으로 시민사회가 정치의 틀에 갇혔다”며 “정부·시장·시민사회 3자 간의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이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건강해진다”고 했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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