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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언터처블’의 윤미향·찜방·신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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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경찰서 골방에서 잠자는 날이 많았던 기자 초년병 시절, ‘정대협’ 행사는 매주 수요일 아침의 보고거리 중 하나였다. 경찰서 정보과가 주는 ‘집회·시위 예정 사항’ 문서에 ‘수요집회’가 늘 있었다. 보통 때는 그냥 넘어가는 일정이었으나 일본 정치인의 망언 파동 직후 등에는 일본대사관 앞으로 취재를 갔다. 그런 날엔 집회 참여자와 기자 수가 엇비슷했다. 그곳에서 이용수·김순덕 할머니를 만났다. 돌이켜 보니 1998년의 300회 집회 때도 그곳에 있었다.

사회의 이념 경직성, 엄숙주의와 #집단의 위력에 곳곳이 성역화돼 #‘열린 사회의 적’ 방조 책임 통감

정대협의 윤미향 간사는 친절하고 꼼꼼한 일꾼이었다. 광복절 등의 ‘무슨 날’이 다가오면 언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새로 찾아낸 피해 사례나 사진 자료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신문과 방송 뉴스에 나왔다. 기자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만날 때는 그가 항상 옆에 있었다. 그렇게 세팅된 취재 환경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줬지만 언제부터인가 일종의 프로토콜이 돼버렸다.

세월이 흘러 외교부를 담당하는 10년 차 이상의 기자가 됐을 때 공무원들에게서 “정대협이 골치”라는 푸념을 자주 들었다. 위안부 피해에 대한 외교적 해결이 정대협이 주장하는 ‘진정한 사과+일본 정부의 배상’ 원칙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우회적 사과와 위로금 형식의 보상이라는 타협안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위안부 문제 타결을 바라지 않는 게 정대협의 속내”라는 말이 돌았다. 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수군거림이 기자 집단과 공무원 사회, 그들이 섞인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정면 돌파를 시도하지 않았다. 투명성·대표성을 검증하려 들지 않았다. 과거사를 부정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는 것이냐는 운동가들의 반격이 등장할 지점에서 의문은 멈춰섰다. 정의와 기억은 그렇게 독점됐고, 운동 단체는 성역이 됐다. 이용수 할머니의 고발이 없었다면 지금 드러난 많은 사실은 영원히 감춰졌을지도 모른다. 경기도 안성의 쉼터에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언론은 지금까지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 앞에 던져질 것을 걱정했다.

이태원발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산하던 때 일부 동성애자들이 서울 강남 한복판의 일명 ‘찜방’이라는 곳에서 집단 성행위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러 곳에 비슷한 형태의 찜방이 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알음알음으로 꽤 알려진 일이었는데도 언론과 이른바 주류 사회는 까맣게 몰랐다. 성소수자는 또 다른 의미의 성역이었다. ‘퀴어 축제’ 소개 정도의 기사와 사진에도 “역겨운 일을 부추기는 거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사회의 근엄성을 실감한 기자들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취재를 꺼리는 습성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그들의 세계’와 일상 세계의 간격은 커졌고, ‘성다수자’들에게도 명백히 반(反)규범적인 행위와 이를 이용한 영리 추구에 사회의 자정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게 됐다.

종교 집단 신천지도 코로나 사태로 주목받기 전까지 사회가 잘 모르는 영역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단적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14만4000명만이 구원받는다고 믿으며 이만희라는 사람이 신의 대리인 행세를 한다는 것, 그리고 30만 명 수준의 집단이 됐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종교 집단의 문제는 내분에 의해 신도 성폭행이나 자금 횡령 등의 뚜렷한 범죄가 드러나지 않는 한 ‘언터처블’의 지대에 있다는 것을 신천지가 증명했다.

사회의 이념 경직성과 엄숙주의, 그리고 집단의 위력은 곳곳에 ‘닫힌 공간’을 만들었다. 그 결과로 선의의 후원자들이 배신당하고, 성적 일탈과 감염병 확산 위험을 키우며, 젊은이들이 헛된 믿음에 인생을 허비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진실에 다가선 내부 고발자의 폭로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그곳들의 장막이 한두 겹 벗겨진 지금, 나 자신이 ‘열린 사회의 적’ 또는 그 적의 방조자가 아니었나를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