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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직격인터뷰

“공수처, 살아 있는 권력 견제 않고 아부하면 단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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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김현(64) 전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회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관련한 인터뷰를 요청하자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거대 조직이 탄생하는 것에 다수의 법조계 인사들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2017년 2월부터 2년간 대한변협 회장직(49대)을 맡았던 그는 현재 법무법인 세창의 대표와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가다 막히면/앉아서 쉬거라/쉬다 보면/보이리/길이’라는 시(‘당부’)를 쓴 김규동 시인이 그의 부친이다.

검찰 수사를 막거나 방해하는 데 #공수처가 악용될 가능성이 크고 #판·검사에 대한 기소권까지 가져 #검찰과 법원 통제 기구 전락 우려

공수처를 걱정하는 법조인이 많은가.
“어디에나 그렇듯 변호사 사회에도 보수와 진보 양쪽이 다 있다. 그렇지만 법이라는 게 기존 체제와 질서를 보호하는 측면이 강하다 보니 보수 성향을 가진 변호사가 훨씬 많다. 대략 변호사의 3분의 2가 현재 추진되고 있는 형태의 공수처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찬성하는 변호사에는 젊은 층이 많다.”
다수의 변호사가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이유는.
“우선은 공수처가 입법·사법·행정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헌법적 근거가 없는 기관이면서도 막강한 사법적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검찰과의 갈등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검찰이 행정부에 대한 수사를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데, 그걸 방해한다거나 검찰의 권한과 기능을 약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여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지 않나.”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이 지난 10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공수처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절제력과 균형감을 갖춘 인사가 초대 공수처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이 지난 10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공수처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절제력과 균형감을 갖춘 인사가 초대 공수처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법률가의 관점에서 신설되는 공수처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공수처 설치·운영법에 독소조항이 많다. 그중 가장 위험한 것은 24조 1항과 2항이다. 1항은 공수처가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중인 공무원 관련 사건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가져간 뒤 덮어버릴 수 있다. 지금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공직자들이 연루돼 있으니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2항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하다 공무원 관련성이 포착되면 공수처에 통보하게 했다. 기밀성은 수사의 생명이다. 공수처에 수사 내용을 알려주면 보안이 유지되기 어렵고 당사자나 권력층으로부터 수사진이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우려해 검찰이 통보를 안 하고 수사를 진행하면 법 위반이라며 공수처가 검사를 기소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 큰 문제는 공수처가 판사·검사와 고위 경찰관에 대해서는 기소권까지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권력이 이를 법원·검찰·경찰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
공수처가 공직자 부정부패를 막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도 있는데.
“공직자 부패 수사는 통상 기업 수사 과정에서 포착된다. 공수처는 수사 대상 제한이 있고 조직의 규모도 크지 않아 그런 수사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결국 권력과 연관된 ‘하명 수사’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미운털 박힌 공직자가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고위 공직자에 대한 ‘사찰’을 하는 기관으로 변질하는 것을 막을 장치가 없다. 퇴직 공직자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는데, 어디까지 퇴직 공직자로 볼 것이냐가 애매한 상태다. 전직 대통령·총리도 퇴직 공직자라며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시대정신에 반한다. 그런데 공수처는 통치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런 점을 지적한 금태섭 의원의 견해에 동의한다.”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2017년 초에 대한변협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에 영장 청구권 부여, 공수처 설치를 놓고 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수사권 조정과 영장 청구권 관련 설문에는 반대가 많았는데 공수처에는 약 70%가 찬성했다. 그때는 변호사 사회에서 검찰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검찰이 너무 강하니 권한을 분산하고, 특히 고위 공직자는 따로 수사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에 공감하는 변호사도 제법 있지만, 대다수는 후유증을 걱정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검찰 개혁이냐에 대한 의문이 퍼졌다. 진정한 검찰 개혁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공수처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졌고 7월에 공수처가 출범하는데.
“정치권에서, 특히 여권에서 공수처가 ‘오버’를 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새로 만들어진 조직은 무리해서라도 큰 건을 노리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초대 공수처장이 많은 일을 하겠다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임기 3년 동안 토대를 굳히는 데 치중하겠다는 자세로 일을 해줬으면 한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초대 공수처장 후보가 지명될 텐데 어떤 사람이 바람직한가.
“절제하고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의욕이 넘쳐 공수처장의 역할을 과도하게 설정할 사람은 아니길 바란다. 공수처장 자리를 더 높은 공직 또는 대권으로 가는 길의 디딤돌로 생각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맡아서는 안 된다. 균형 감각도 중요하다. 야권에 수사가 집중되면 국민의 신뢰를 곧바로 잃게 된다. 공수처장을 만나게 되면 ‘검찰과 대결하지 말고 선의의 경쟁을 해라.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하지 않고 그들에게 아부하면 공수처가 단명한다’고 말하겠다.”
여러 사람이 거론되고 있는데 누가 유력하다고 보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고 나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민변에서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민변 출신 공수처장에 대한 생각은.
“위험한 일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 친정부 성향의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법무부의 여러 자리에 진출했다. 실무 경험은 없고 자신들의 주장만 강해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공수처장을 민변 출신이 맡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현재의 공수처장 임명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여론도 있는데.
“우선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 문제가 있다. 7명으로 꾸려지는데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 회장, 여당 측 2명, 야당 측 2명으로 구성된다. 결국 다섯 명 정도가 이 대통령 의중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위원회가 두 명을 추천하는데 비슷한 성향의 두 사람이 뽑힐 가능성이 크다. 그중 한 명을 대통령이 지명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된다. 알다시피 요즘 청문회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추천위원회가 폭넓게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로 법을 고쳐야 한다.”
추천위 문제 외에도 법률적으로 정비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공수처는 헌법에 근거하지 않은 권한을 행사한다. 헌법 기관인 검찰의 주요한 기능을 약화시킨다. 아마도 조만간 누군가가 위험심판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한다. 개헌하게 되면 공수처가 가진 기소권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문제를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법조계에서 법치주의 훼손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된다.
“여론을 동원한 검찰과 법원에 대한 권력 주변부의 압력이 적법한 임무 수행을 위축시키고 있다. 일례로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에서 법정 구속 결정을 한 판사에 대한 공격에 정치권도 가세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방치하는 권력자는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하나.
“대한변협 회장 임기가 끝난 뒤 앞으로 남은 20년에 할 일을 고민하다 변호사 200명이 참여하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법률을 만들자는 뜻을 모았다. 존엄사·징벌적 손해배상·집단 소송·세금 사용, 이 네 가지 분야에 대한 연구를 1차로 추진하고 추후 도시계획·건강보험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세미나를 통해 연구와 토의를 하고 자료집도 낼 생각이다.”

◆김현 변호사

1956년 서울 출생. 경복고, 서울대 법대 졸업. 1983년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17기). 미국 워싱턴대 박사(해상법 전공). 런던국제중재재판소(LCIA) 중재인, 사법연수원 외래교수,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해양수산부 고문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49대) 등 역임.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 대표.

박재현 논설위원

※김서희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함께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