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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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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스타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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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끝나고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 확산으로 다시 사회가 술렁이기 시작한 지난주, 안타까운 죽음이 보도됐다. 지난 10일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던 50대 후반의 경비원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건이다. 그는 지난달 중순부터 근무하던 아파트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고 한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지방 소도시에 살며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간 일했던 63세 조정진씨가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 빌딩 청소부 등을 전전하며 쓴 시급 노동 일지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사진) 때문에 수면 위로 올라온 신조어다. 책 속에는 우리가 외면해온 노인 노동자의 팍팍한 삶과 암담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임계장과 비슷한 말로 ‘고다자’도 나온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의 줄임말이다.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궂은일들을 도맡아 묵묵히 일하지만 임계장을 바라보는 시선과 처우는 너무나 얄팍하다. 가장 잔인한 건 임계장을 괴롭히는 다수가 젊은층이라는 점이다. 아직 60대가 되려면 멀었다고, 당신들처럼 가난하고 무기력하게 늙지 않겠노라 자신하며 현재를 흥청망청 살고 있는 그들이 조롱하듯 내뱉는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수많은 임계장들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는다.

영화 ‘은교’의 주인공 이적요(박해일 분)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젊음은 반드시 퇴색되고, 늙은 낙엽의 형태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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