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억 탈루한 한의사, 그에겐 은행 ATM이 '탈세 머신'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동산 탈세 어떻게 하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부동산 탈세 어떻게 하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의사 A씨는 환자로부터 진료비를 현금으로 받았다. 그는 매달 수백만원의 현금을 병원 근처 자동인출기(ATM)로 달려가 자기 계좌로 입금했다. 병원 매출액을 일부러 적게 신고해 소득세를 탈루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까지 보태 고가 부동산을 취득했다. 이후 증여세는 내지 않았다. 김길용 국세청 부동산납세과장은 "A씨가 취득한 부동산 가격과 신고한 자금 출처 간에 맞지 않는 점을 발견해 조사한 결과, 수억원대 소득세·증여세 탈루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탈세 혐의자 517명 세무조사 

국세청은 7일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탈세를 시도한 고액 자산가 517명을 세무조사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자는 지난달 21일 국토교통부·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 합동 '부동산시장 불법 행위 대응반'의 3차 통보 자료를 검토해 279명을, 나머지는 국세청 자체 조사로 선정했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 투기과열지구에서 고가 주택을 사들이거나 고액 전세에 살면서 편법 증여 혐의 등이 있는 사람들이다.

국세청이 꼽는 요주의 인물은? 

국세청은 젊은 나이(30세 이하)에 일정한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증명되지 않는 데도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사람을 증여세 탈루 '요주의 인물'로 꼽는다. 조사 대상자 중 20~30대(286명)가 55.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주택·꼬마빌딩 임대업 법인을 설립하면서 설립 자금 출처가 불투명하거나 부동산 법인 내부 자금을 빼돌린 혐의가 있는 사람도 주목했다. 이번 조사 대상이 된 부동산 법인은 30곳(5.8%)이다.

자기 돈 '0원'으로 부동산 산다고? 

탈세 의심자들도 부동산을 사들일 때 주로 대출을 이용했다. 이번에 통보한 835명의 부동산 매입 자금의 차입금 비율은 평균 70%에 달했다. 아예 자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부동산을 샀다고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자금조달계획서에 자기 자금을 '0원'으로 쓴 사람은 91명이었다. 자기 자금 비중 10% 이하인 사람도 95명이다. 10명 중 2명(22.3%)은 대출 비중이 90%가 넘는다는 계산이다. 공석룡 국세청 조사2과장은 "자기 자금 없이 부동산을 샀다는 것은 부모 등 친인척으로부터 차입한 비중이 크다는 의미"이라며 "차입을 가장한 증여인지 여부를 철저히 검증하고 빚을 갚는 모든 과정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탈세 의심자, 부동산 살 때 자기 돈 얼마나 썼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탈세 의심자, 부동산 살 때 자기 돈 얼마나 썼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토부 통보 자료 전수 검증할 것" 

국세청은 부동산을 자녀에게 시중 가격보다 싸게 팔거나 본인이 대주주인 회사에 비싸게 파는 사례도 점검할 예정이다. 세입자인 경우에도 부모가 전세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은 '불법 증여' 행위를 조사한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투기과열지구 내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사고팔 때는 예금잔액증명서·소득금액증명원 등 증빙 자료 제출이 의무화돼 탈세 의심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토부 등 관계기관 통보 자료를 전수 분석해 탈루 혐의자를 검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