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대형 사건 와중엔 과학을 바탕으로 한 분석보다 투자 성공을 해본 사람의 직관이 더 의미했다는 속설이 있다. 중앙일보가 유명한 투자자인 짐 로저스의 싱가포르 집에 전화를 건 이유다. 그는 여행광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싱가포르 집에 갇혀 있다. 그는 2018년 4월 기자와 통화에서 “일생일대 가장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3대 투자자 짐 로저스 전화 인터뷰 #지금 랠리는 일단 좋다. 하지만 조정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빚더미 위에 앉아 있어 영국처럼 쇠락한다. #코로나 사태는 남북한 사이가 부드러워질 기회! #자신을 비판하는 한국 보수층엔 “국방비는 낭비다!”
“주가는 허공에 떠있지 않아, 언젠가 코로나 피해 반영한다!”
- 지금 코로나19 위기가 그때 말한 위기인가.
- “기억력이 아주 좋은가 보다. 하하! 바이러스 때문에 위기가 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때(2018) 위기가 오고 있다고 말한 것은 빚 때문이었다. 2008년 위기가 빚이 많아 발생했다. 그런데 이후 각국 정부 부채 등 빚이 더 많아졌다. 빚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 그런데 3월 패닉 직후 주가가 많이 회복했다.
- “나이스 랠리(rally)다. 투자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당분간 오를 수도 있다.”
- 왜 그렇게 보는가.
- “미국 Fed(연방준비제도)가 무엇을 하는지 봐라. 엄청나게 돈을 찍어내고 있다. 새로운 달러가 어마어마하다. 올 11월에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때까지 주가가 오를 수 있다. 그런데 끝나지 않았다.”
- 무엇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 “주가 조정이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낳은 경제 피해가 엄청나다. 주가는 허공에 떠 있지 않다. 언젠가는 피해를 반영한다.”
-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요즘 주식을 많이 샀다.
- “지금 랠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투자자는 자신이 아는 만큼, 아는 회사나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판단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빚이 미국을 부셔버릴 것이다”
- 코로나 이후 세계가 궁금하다.
- “여기 싱가포르의 거리가 텅텅 비었다. 사람들이 거의 없다. 내 아이들이 집에 종일 머물고 있다. 홈스쿨링이나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될 듯하다.”
- 그런 일상적인 변화 말고, 미국의 미래가 궁금하다.
- “역사를 봐라! 역사가 주는 교훈은 아주 간단하다. 20세기 초까지 세계 최고 강대국은 영국이었다. 영국이 (1차대전 등으로) 엄청나게 돈을 썼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 그들은 최고 강대국 자리에서 밀려났다.”
- 미국이 빚 때문에 유일한 강대국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말인가.
- “미국 빚이 급증하고 있다. 지금 내가 빚이 얼마인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하! 하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빚이 급증하고 있다. 눈덩이 빚을 견딜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빚이 미국을 부셔버릴 수 있다.”
미 의회 예산국(CBO)은 올해 미 연방정부 부채비율(GDP 기준)이 90%대 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2조2000억 달러(약 2684조원)에 이르는 경기부양을 하고 있다. 경기부양 규모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CBO는 올해 연방정부 부채비율이 100%를 훨씬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 사태는 남북에 기회 놓치지 말아야!”
- 포스트-코로나 세계에서 한국은 어디있을까.
- “난 ‘한반도(직접 한국어로 말함)’가 아주 짜릿한(exciting) 곳이라고 믿고 있다.”
- 왜 짜릿한 곳인가.
- “38선(휴전선 대신 38선이란 말을 씀)이 조만간 열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38선이 열리면 한국 개인과 기업은 환상적인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북한은 자원과 훌륭한 인적 자원을 갖고 있다.”
- 한국 보수층은 당신의 북한 낙관론 등이 허풍(ballyhoo)이라고 비판한다.
- “한국인 일부가 북한을 싫어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내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남북한 평화가 정착되면 양쪽 모두 엄청난 군비를 줄일 수 있다. 이 돈이 경제 발전을 위해 쓰인다고 생각해봐라. 한국 보수가 셈을 잘했으면 좋겠다. 하하!”
- 요즘 북한의 코로나 사태가 어떤지 궁금하다.
- “중앙일보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하하! 요즘 북한 코로나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다만, 북한도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이 협력할 기회다.”
- 무슨 말인가.
- “한국의 코로나 검사 장비와 자원이 훌륭한 것으로 여기(싱가포르)에 알려져 있다. 북한을 도와주면 남북 사이가 아주 부드러워질 수 있다. 코로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38선이 더 빨리 열리지 않을까.”
짐 로저스
1942년 미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역사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학·경제학 공부했다.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설립해 많은 돈을 벌었다. 워런 버핏과 소로스와 더불어 3대 투자자로 통한다. 현재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