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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불안심리 이용한다…개헌 불씨 살리려는 아베 꼼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를 정점으로 한 일본 내 개헌 세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을 계기로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오봉 명절을 맞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야마구치현 나가토에 있는 선친 묘소를 참배하고 개헌 의지를 다짐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오봉 명절을 맞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야마구치현 나가토에 있는 선친 묘소를 참배하고 개헌 의지를 다짐했다. [연합뉴스]

꺼져가는 개헌의 불씨를 코로나19로 되살려보겠다는 의도다.

3일 헌법기념일에 "개헌 반드시 성취" #자위대조항보다 긴급사태조항 전면에 #코로나19 국민불안 편승,전략 바꾼 듯 #우익 정치인 앞장 우익언론 지원 사격 #요미우리 "아베 임기내 개헌은 어려워" #전문가 "코로나 대응실패 핑계로 들려"

아베 총리는 3일 헌법기념일을 맞아 우익인사들의 헌법 포럼에 보낸 비디오메시지에서 "헌법개정에의 도전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반드시 성취해나가겠다. 이런 결의에 흔들림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긴급사태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국민이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국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은 무겁고도 중요한 과제"라고도 주장했다.

아베 총리가 이 메시지를 보낸 포럼은 ‘우익의 여전사’로 불리는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 모임’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일본 헌법기념일인 2016년 5월 3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서 개헌파 집회가 열린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영상 메시지가 상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헌법기념일인 2016년 5월 3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서 개헌파 집회가 열린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영상 메시지가 상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매년 이곳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의식해 ‘긴급사태조항’을 헌법개정 주장의 제일선에 내세운 것이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평화 헌법의 핵심인 9조(전쟁포기·무력 불보유)에 자위대 근거 규정을 밀어넣는 개헌 작업에 몰두해왔다.

하지만 9조 개정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만만치 않고, 이로 인해 헌법 개정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코로나19와 긴급사태조항 신설을 앞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튼 모양새다.

자민당은 지난 2018년 정리한 개헌 4항목에서 긴급사태조항의 창설을 주장했다.

대지진 등 긴급사태 발생시에 내각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강화하고, 선거가 실시되지 못할 경우 국회의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안 등이 담겨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커진 상황에 편승해,이를 전면에 내세워 개헌 분위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개헌 추진 세력의 계산이다.

아베 총리의 심복으로 2011년 독도를 방문하겠다고 한국을 찾았다가 김포공항에서 쫓겨났던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중의원 헌법심사회 자민당측 간사가 총대를 메고 야당측에 관련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2011년 8월 "울릉도를 방문해 독도를 바라보겠다"며 입국해 김포공항에 9시간 머물던 일본 자민당 신도 요시타카, 사토 마사히사 ,이나다 도모미 의원 ( 왼쪽부터)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국장으로 가고 있다.

2011년 8월 "울릉도를 방문해 독도를 바라보겠다"며 입국해 김포공항에 9시간 머물던 일본 자민당 신도 요시타카, 사토 마사히사 ,이나다 도모미 의원 ( 왼쪽부터)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국장으로 가고 있다.

또 외곽에선 아베 총리의 절대우군인 산케이 신문이 ‘더 이상 긴급사태조항 신설을 늦출 수 없다'는 기획기사를 실으며 바람을 잡고 있다.

일본 헌법에 긴급사태·국가긴급권 관련 조항이 없는 것은 비상사태를 이유로 인권 제한과
전시체제 강화가 횡행했던 군국주의 시대에 대한 반성 차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무력한 정부가 부각되면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긴급사태조항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4월 18~19일 실시해 3일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의 긴급사태조항 창설 주장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45%로, “반대한다”(14%), “잘 모르겠다”(34%)보다 앞섰다.

하지만 이같은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한다고 해도 아베 총리가 내년 9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내에 개헌을 완수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코로나19 극복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할 상황에서, 개헌안 국회 처리에 필요한 3분의2 의석도 확실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일반 국민들 사이엔 아직도 개헌 찬성과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기 때문이다.

역대 총리들 중 가장 개헌에 애착을 보이는 아베 총리지만, 역설적으로 본인이 개헌의 큰 걸림돌이 돼 있기도 하다.

3일 보도된 아사히 신문의 여론 조사에선 '아베 정권하에서 헌법 개정이 실현되는 데'대해 반대가 58%였고, 찬성은 36%에 불과했다.

마이니치 조사에서도 ‘반대’가 46%,찬성은 36%였다.

아베 정권과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요미우리 신문도 "아베 총리가 목표로 내걸고 있는 임기내 개헌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분석했다.

자민당 간부는 요미우리에 “코로나19를 일단 극복한 뒤 가을 임시국회 이후에 다시 무엇인가를 도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TV아사히 뉴스의 해설자 고토 겐지(後藤謙次)는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조항을 앞세워 개헌 필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총리로선 이를 (코로나 확산을)계기로 현재 정체돼 있는 개헌 논의를 진전시켜보겠다는 심산이겠지만, 이번 발언은 오히려 지금의 코로나 대책이 잘 되지않고 있는데 대한 핑계로 들린다"고 꼬집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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