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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입원 생존자 “일정 교육 없던 현장…옆에서 뭐하는지 아무도 몰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1일 오전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1일 오전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참사에서 살아남았지만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김모(59)씨는 1일 오른손 엄지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았다. 물류창고 지하 2층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온 김씨는 탈출 과정에서 엄지손가락이 크게 찢어졌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서 만난 김씨는 “작업 일정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조차 없었다”며 입을 열었다.

참사 현장서 부상…"TBM조차 없어"

참사가 벌어진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 현장은 다른 현장과는 매우 달랐다고 한다. 김씨가 꼽은 가장 큰 문제는 ‘TBM(Tool Box Meeting)'이 없었다는 점이다. 통상 현장소장 등 감독자는 매일 작업 시작 전 어떤 작업이 어느 구간에서 진행되는지 전달하는 교육을 시행한다. 이 때문에 TBM을 조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씨는 “설비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엘리베이터 작업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 알려줘야 하는데 이 현장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며 “다른 팀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데 우레탄폼 때문에 불을 쓰면 안 된다든지 그런 것을 어떻게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그는 “당연히 화물용 엘리베이터 공사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천 화재 참사로 경기도 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김모(59)씨가 화재 현장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그림. 김씨는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던 중 오른손을 다쳐 선이 똑바르지 않다. '방1'이 김씨가 작업하던 냉동창고. 박현주 기자

이천 화재 참사로 경기도 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김모(59)씨가 화재 현장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그림. 김씨는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던 중 오른손을 다쳐 선이 똑바르지 않다. '방1'이 김씨가 작업하던 냉동창고. 박현주 기자

급박했던 탈출 상황

김씨는 화재 참사 당시 지하 2층의 냉동실 작업장에서 우레탄폼 위에 강판을 대고 있었다. 김씨는 작업 도중 냉동실 작업장 바깥에서 난 ‘펑’하는 폭발음을 들었다. 그때까지도 화재 사실을 알지 못 했지만 곧이어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려 바로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고 한다.

소리를 듣고 곧장 냉동실 작업장을 나왔지만 이미 지하 2층에서 물류창고 밖으로 통하는 출구 세 곳에 불이 붙어 있었다. 동료들과 소화기를 들고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이미 불이 많이 퍼져 있었고 확산 속도가 빨라 불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연기가 가득 차 더는 못 견딜 상황이었는데 한 출입문에 불이 사그라들어 있었다”며 “그 문으로 동료들과 뛰쳐나왔다”고 했다. 이어 “재수가 좋았다”고 덧붙였다. 지하 2층에서 김씨와 함께 작업하던 동료 6명 중 3명은 나오지 못 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말을 하던 그는 화재 현장을 떠올리는 것을 괴로워했다.

"지하 2층선 우레탄폼 작업 없어"

지하 2층에서는 우레탄폼 작업이 없었다고 한다. 보름여 전에 우레탄폼 작업이 마무리됐고 이미 건조까지 끝난 상황이라 전동 드릴로 그 위에 강판만 댔다고 한다. 김씨는 “지하 1층에서 난 불이 아래층으로 번진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지하 1층에서는 유증기를 발생시키는 우레탄폼 작업이 이뤄졌다. 유증기가 지하 2층으로 내려와 가득 찼을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김씨의 증언은 다른 작업자들의 말과도 일치한다. 화재 당시 같은 층에 있던 민모(59)씨는 “냉동창고 안에서는 화재 위험이 있는 도장 작업이나 페인트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하 2층 냉동창고 밖에 있던 화물용 엘리베이터 작업장이나 지하 1층 작업장에서 불길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잔여 유해 수색을 위해 중장비를 동원, 건물 안에 남은 잔해물을 제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잔여 유해 수색을 위해 중장비를 동원, 건물 안에 남은 잔해물을 제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화지점·원인 규명 중

한편 경찰은 관계 기관과 1차 합동감식을 마친 지난달 30일 “지하 2층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음날 2차 합동감식을 마친 정요섭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현장에서 수거한 작업 공구를 감정기관에 보내 화재와의 관련성을 파악할 방침”이라며 “발화 위치를 지하부 특정 지역으로 가리킬 수 없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이천=박현주·이가람·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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