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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화재] 세월호뒤 형량 올랐다…2008년 이천 참사땐 실형 0, 지금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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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4월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준비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준비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 참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시대를 탔다. 솜방망이 판결이란 비판을 받으며 형량은 조금씩 더 세졌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참사의 판박이 사고인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40명이 사망했고 9명이 다쳤으며, 이후 8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실형을 받은 피고인은 아무도 없었다.

'화재참사 판결' 솜방망이 비판 받으며 형량 세져

당시 법원은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여서 피고인을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냉동창고의 대표와 현장소장, 방화관리자 등에게 벌금형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사 출신인 신인수 변호사는 "과거 안전사고에 대한 법원의 형량은 약한 편이었다"며 "그사이에 비슷한 참사가 계속해 반복됐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바꾼 대형참사 판결 

12년 전 판결을 언급한 건 이번 이천 화재 참사가 그때와 거의 똑같은 이유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용접과 가연성 소재, 우레탄폼, 안전관리 소홀은 대형 화재의 반복되는 원인이다. 법원의 이런 '솜방망이 판결'은 여론의 비판을 받으며 변화를 겪었다. 판사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30일 팽목항의 등대를 배경으로 세월호 추모 조형물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0일 팽목항의 등대를 배경으로 세월호 추모 조형물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한 달 뒤인 2014년 5월.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9명이 죽고 60명이 다쳤다. 가스 배관작업 중 불꽃이 튀어 우레탄폼으로 옮겨붙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보다 사망자가 훨씬 더 적었다. 법원은 그러나 이 사건의 화재 책임자인 가스배관 작업반장과 터미널 관리소장 등에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12월 "국민적 염원을 반영하겠다"며 대형참사의 양형 기준을 높였다. n번방 사태 이후 디지털 성범죄 권고 형량을 높인 것과 과정이 똑같았다.

4월 30일 오전 경기도 이천 모가체육공원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피해 가족 시설에서 한 피해 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뉴스1]

4월 30일 오전 경기도 이천 모가체육공원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피해 가족 시설에서 한 피해 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다. [뉴스1]

2017년 대형참사, 징역 7~8년  

2017년엔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숨졌다. 앞선 참사들의 판박이라 불린 또 하나의 화재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다. 법원은 제천화재 건물주에게 징역 7년을, 화재 원인을 제공한 건물 관리과장에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여론이 들끓으면서 형량이 과거보다 대폭 늘어난 거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전사고에 관해 법원은 이제 고의가 아닌 과실범에게도 엄격한 책임을 묻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8년엔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친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가 있었다. 법원은 "수차례 불법증축이 이뤄진 노후 건물에 방화시설이 제대로 없었다"며 세종병원 이사장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판결의 형량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故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씨(왼쪽)가 2018년 12월 국회에서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3당 합의 소식을 듣고 故 김용균 씨 직장동료와 포옹하고 있다. [뉴스1]

故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씨(왼쪽)가 2018년 12월 국회에서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3당 합의 소식을 듣고 故 김용균 씨 직장동료와 포옹하고 있다. [뉴스1]

김용균법이란 변수 

경찰과 검찰은 앞선 화재 사고의 수사 기록을 살펴보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사고엔 2018년 12월 통과된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와 원청업체의 처벌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 안전 과실이 확인될 경우 사업주와 하도급을 준 원청업체는 김용균법 위반만으로도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징역 5년 이하)까지 더해지면 형량은 더 올라간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는 법정 형량이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김상준 변호사는 "판결은 그 시대의 공기와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다"며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점점 더 엄격해져 왔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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