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힘 '뒤집어 보기'] 술? 딱 걸렸어! 벌금 2000만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K-리그 우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에 우승한다면 1993~95년에 이어 사상 두번째 3연패다. 일각에서는 "성남이 너무 독주해 프로축구가 재미없다""돈으로 좋은 선수를 싹쓸이하면 누군들 우승 못할까"라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멤버가 좋다고 항상 우승하는 건 아니다. 성남이라는 팀에는 '뭔가 다른 게'있다. 세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성남 뒤집어보기'를 시도해 본다.

# 1. 규율 - 걸리면 그랜저 한대

98년에 부임한 차경복 감독은 당시 엉망이었던 선수단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세웠다. 외박.음주 등에 대해 '초범 1백만원, 재범 5백만원'등 엄청나게 무거운 벌금을 매겼고, 액수를 점점 올려갔다.

지난해에는 2천만원을 선고(?)받고 5백만원을 감해 1천5백만원을 낸 선수도 있다. 벌금은 어김없이 월급에서 공제돼 선수 상조회 기금으로 쌓인다. 그래서 지난 겨울 선수들 사이의 유행어가 "걸리면 그랜저 한대"였다.

차감독은 프로선수들의 '가장 약한 고리'인 '돈'을 통해 개성 강한 선수들을 다잡았다. 규율이 잡히니 팀은 저절로 굴러갔다.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몸 관리와 개인훈련을 안할 수 없었다.

차감독은 올 시즌 중반까지 '나이 많은 선수를 너무 혹사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베테랑 위주의 베스트11을 고집했다. 벤치 선수들이 충분히 '칼'을 갈도록 뜸을 들인 것이다. 중반 이후 신태용.싸빅.박충균 등 부상자가 나오자 이영진.김우재.전재호 등 '독을 품은' 선수들이 나와 주전의 공백을 너끈히 메워버렸다.

# 2. 자율 - 한밤에 찾아온 김도훈

올해 초 중국 전지훈련 때의 일이다. 한밤중에 누군가 김학범 코치의 방문을 두드렸다. 전북에서 이적한 김도훈이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김도훈의 고백에 김코치는 "너 정도 캐리어의 선수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리고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라"고 말했다.

김도훈은 "지금까지 그렇게 얘기해준 지도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주문과 간섭에 시달려온 김도훈이 '자율'이라는 날개를 다는 순간이었다. 요즘 김도훈은 "축구할 맛이 난다. 축구가 재미있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성남은 훈련을 적게 하기로 유명한 팀이다. 베테랑 주전 선수들이 팀을 적절하게 리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김학범 코치는 상대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눈이 충혈될 정도로 경기 비디오를 보고 또 본다. 2군을 지도하는 안익수 코치는 우리나라에서 세명뿐인 '아시아축구연맹 프로 지도자 라이선스' 보유자다. 성남 코치진의 능력과 팀워크는 12개 구단 중 최고다.

# 3. 모순 - 러브모텔 뒤의 선수 숙소

성남 선수단 숙소는 용인시내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허름한 러브모텔 바로 뒤에 있다. ㈜일화 여직원 숙소로 쓰던 곳으로 워낙 오래된 데다 햇볕도 잘 안 들고 퀴퀴한 냄새마저 난다. 차경복 감독은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 '숙소 좀 보자'고 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한다.

성남은 '모순'의 팀이다. 경기력은 최강이지만 인기는 밑바닥에 가깝다. 올해 홈 승률이 77.8%로 1위. 하지만 홈 평균 관중수는 8위(8천78명)다. 서포터스 숫자도 12개 구단 중 가장 적다. 유니폼은 브라질 대표팀의 것을 염치없이 베꼈다.

구단의 목표는 '오로지 성적'이다. 구단 운영자금을 보내주는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축구광이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축구단 운영국장(주무)을 했던 김모씨가 올해 초 '선수 매수와 승부조작'설을 폭로했고, 구단은 김씨를 공금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한 코칭스태프는 "구단 운영이 구멍가게만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통산 6회 우승을 목전에 둔 성남이 '명문 구단'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