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말도 안되는' 남북한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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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등 통일 이전 고대 삼국의 언어는 어땠을까?

'고구려 연구(제9집)'(고구려연구회.학연문화사)에 따르면 세 나라의 언어는 단순히 사투리적 차이만 있었을 뿐 단일어였다. 삼국 통일 이후 남북한 분단 이전까지 통일국가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언어적 차이가 없었다는 점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언어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다. 언어가 다르면 의사 소통이 자유롭지 못해 사상이나 문화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2천5백~3천5백개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한국어는 남북한 등을 합쳐 7천만명 이상이 공용어로 사용하며, 사용 인구로 따지면 세계 20위권 안에 든다.

그런데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남한말과 북한말 간에 차이가 매우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적잖은 말들이 번역 없이는 뜻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것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미경(민주당) 의원이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와 함께 북한의 초.중.고 교과서(7과목.9권)를 분석한 결과다(본지 9월 16일자 10면).

이에 따르면 맞춤법.문법.한자어.외래어.전문용어 등 거의 언어 전반에 걸쳐 이질화가 심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전등알(백열전구).세평방정리(피타고라스의 정리).불타기반응(연소반응).녀성고음(소프라노).산줄기(산맥) 등으로 남한과 표현이 사뭇 달랐다. 주무랑마봉(에베레스트산).탕겐스(탄젠트.tangent).휘거(피겨스케이팅).뽈스까(폴란드).깔리만딴섬(보르네오섬).마쟈르(헝가리) 등 외래어 표기법도 딴판이었다.

북한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말 용법을 왜곡한 사례도 보였다. 이를테면 존칭 조사인 '○○께서는'을 복수에 사용할 때 남한에선 'A와 B께서는'처럼 뒷말에만 붙이면 된다. 하지만 북한에선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께서는'으로 표기했다. 수령을 호칭할 땐 항상 극존칭을 붙여야 하므로 어색해도 존칭 조사를 두번 쓴 것이다.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는 "같은 말은 공통적인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민족 통일을 이루는 데 무엇보다도 우선한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비해 남북한이 어떻게 하면 언어의 이질성을 해소하고 우리말을 바르게 가꿔 나갈 수 있을까.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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