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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간 박철우 "계약 못 할까 많이 불안...삼성 팬 생각에 울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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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안 될까 봐 많이 불안했어요. 삼성화재를 떠난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타이밍이 이렇게 됐네요. 삼성화재 팬들 생각하면 많이 울컥하네요."

박철우. [사진 한국배구연맹]

박철우. [사진 한국배구연맹]

프로배구 한국전력이 자유계약선수(FA)인 '왼손 거포' 박철우(35)를 영입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18일 "자유계약선수(FA) 박철우와 계약을 마무리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20일에 공식 발표한다. 구단 역대 최고 대우"라고 전했다. 박철우는 올해 FA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히는 나경복(우리카드) 계약 조건과 비슷한 수준에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 원년인 2005년 현대캐피탈에 입단한 박철우는 첫 번째 FA가 된 2010년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그리고 한국전력에서 새로운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박철우는 V리그를 대표하는 라이트 공격수다.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하고 프로에서 15시즌 동안 역대 최다인 통산 5681점을 올렸다.

라이트 공격수에게 30대 중반의 나이는 전성기가 지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박철우는 이번 시즌 라이트는 물론 센터로도 활약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득점 7위(444점), 공격 종합 6위(성공률 51.48%), 오픈 공격 4위(50.62%)에 오르며 삼성화재 주포 역할을 했다. 한국전력은 그런 모습을 높이 샀다.

박철우는 18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삼성화재에 대한 애정이 워낙 있어서 팀을 떠나는 마음이 안 좋다. 삼성화재와 계약 협상이 늦어지는 사이 한국전력에서 '정말 필요하다'고 말해주셨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전력과 계약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박철우와 일문일답.

-삼성화재를 떠나 한국전력에 간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월요일(20일)에 계약 보도자료가 나갈 거라고 했는데, 기사가 먼저 나왔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난 것은 아니라서 조심스럽다. 삼성화재 팀에 대한 애정이 워낙 컸는데, 이렇게 돼서 마음이 안 좋았다. 아쉽게 됐다. 그래도 주변에서 놀라면서도 축하해주셔서 다행이다."

-FA 이적 기사 댓글에도 축하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사실 안 좋은 내용의 댓글이 많아서 상처받을까 봐 다 보지 못했다. 잠깐 봤는데 축하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하더라. 솔직히 한국전력과 사인하기 직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삼성에서 10년 동안 있었다. 팀과 동료 선수들에게 애정도 많았다. 삼성화재에 정이 참 많았다. 삼성화재 팬들도 저에게 응원 많이 해주셨다. 공익근무 요원할 때 삼성화재 팬들이 직접 와서 챙겨주기도 하셨다. 코트에서 뛰지 않는 선수에게도 그렇게 마음 써주는 팬들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 아내는 사인하러 가는 날 펑펑 울 정도였다. 마음이 착잡했다. 삼성 팬들에 대해 생각하면 아직 마음이 울컥하다."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서도 계속 삼성화재 남아있고 싶다고 했다.
"불과 4일 전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타이밍이 정말 공교롭게 이렇게 됐다. 한국전력에서 계약 이야기를 꺼낸 후, 권영민 코치님 전화가 바로 왔다. 처음 시작(현대캐피탈)을 같이 했으니까 마지막(한국전력)도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 또 장병철 감독님도 연락을 주셨는데 '정말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삼성화재에서도 물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팀이 현재 감독님 거취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FA 결정도 미뤄진 상태였다. 어느 팀에도 연락이 안 오면서 이러다 계약을 못할까 봐 많이 불안했다. 그때 한국전력에서 연락이 오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특히 나이가 많은 것을 장점으로 봐주셨다. 대부분 나이가 많으면 마이너스로 보는데, 한국전력은 오히려 팀을 잘 이끌 플러스 요소로 생각했다. 그래서 새롭게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들더라."

-지난 시즌 출전 시간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끼쳤나?
"출전 시간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라이트로 하다 훈련을 제대로 못 하고 센터로 들어가면서 스스로 불안했다. 그런 상태에서 경기에 나가도 팬들이 좋게 봐주셔서 그저 감사했다. 한국전력에서도 그런 부분을 잘 봐주셨다."

2018~19시즌에 34경기 133세트를 뛰었던 박철우는 이번 시즌에는 28경기 91세트에만 나왔다. 시즌 초반에는 라이트 외인 공격수 산탄젤로 부상으로 박철우가 주로 라이트로 뛰었지만, 산탄젤로가 복귀한 뒤에는 센터로 기용되기도 했다.

-한국전력에서 포지션은?
"아마도 라이트 고정일 것 같다. 내년에 서재덕 선수가 오면 서재덕이 라이트를 하고 내가 센터를 하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아니면 서재덕 선수가 리시브가 워낙 좋아서 레프트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장병철 감독은 "박철우는 라이트로 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는 레프트로 영입할 계획이다. 장 감독은 "지난해 우리 팀 득점이 최하위였는데 철우와 레프트 외국인 선수로 공격력을 끌어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인어른(신치용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이 계약 앞두고 조언해 주셨나?
"장인어른이 '너를 인정해주고 더 좋은 조건을 주는 게 프로다. 프로답게 선택하라. 뭘 하든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해주셨다. 그래서 저도 선택할 때 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한국전력에서는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데.
"책임감이 커졌다. 삼성화재에서는 어떤 팀이라는 것을 잘 알아서 후배들에게도 많이 이야기해 줬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일단 고참으로서 팀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팀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어쨌든 솔선수범이 답이다. 앞서서 먼저 잘하면 선수들도 잘 봐주지 않을까 싶다."

-마흔 살까지 뛰고 싶어 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장인어른이 '선수는 실력으로 말하는 거야. 연봉을 보장해주고 어느 정도 대우해준다고 해서 안주해서 플레이할 바에는 은퇴해라. 선수로서 충실하지 못한다면 가치가 없다. 최선을 다해서 팀을 위해 헌신하라'고 하셨다. 이번 여름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 매 시즌 더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체력적인 부분 더 발전시킬 것이다.

-어쨌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많은 나이에도 다른 팀에 가게 되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삼성화재에 있으면서 내가 계속 저물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을 바꾸니 다시 도전하는 느낌이다. 의욕도 생기고 마음가짐이 새롭다. 20대 삼성화재로 옮기던 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 심장도 두근두근하고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 최하위였다. 다음 시즌 어느 정도까지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선수라면 언제나 우승을 꿈꾸어야 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봄 배구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팀워크를 뭉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배구계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생겼다.
"한국전력 구단 관계자가 "장인어른이 시작했던 팀에서 사위가 마무리를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이번 이적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치용 선수촌장은 지난 1980년 한국전력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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