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초유의 거여(巨與),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갈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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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례 없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지역구만으로 과반을 휩쓸어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상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를 위해 필요한 의석을 확보했다. 헌법 개정을 제외한 입법 활동에서 대부분 권한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총선과 이듬해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하는 신기록도 만들었다.

중앙·지방 이어 의회 권력도 차지했지만 #정권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 압도 때문 #지난 3년 부작용 성찰해 초심 돌아가야

충격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총선 결과를 놓고선 보수 야당의 자멸과 함께 코로나 사태가 선거 이슈를 삼켰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권 심판 기류가 강했지만 국난 극복 프레임이 먹히면서 야당 실책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여당의 지금 같은 일방적 승리를 예측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 위기 상황이 현 정부의 실책을 덮어버렸다는 주장엔 일리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간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 경직되게 추진된 게 사실이다. ‘청와대 정부’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 독주가 계속되며 코드 인사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지수와 청와대 인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청와대는 비판이나 쓴소리를 ‘정권 흔들기용 발목 잡기’로 규정하고 귀를 닫았다. 국정 곳곳에 경고등이 들어왔던 건 소통의 부재와 일방통행으로 치달은 결과다.

행정·사법·지방 권력에 이어 의회 권력까지 확고하게 차지해 무소불위 독주가 가능해진 지금 문 정부와 여당은 진짜 국정 운영 능력의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승리를 과거식의 독선적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고 다수의 힘을 내세워 과시하려 한다면 언제든지 민심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단독 과반 의석을 얻어 환호했지만 무리한 입법 시도와 당내 계파 싸움으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나라 사정이 백척간두다. 민생 현장은 신음 속에 골병이 깊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실업 대란으로 좌절하고 출산율과 자살률이 최악이다. 연일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의 위협도 심상치 않다. 이런 와중에 지역과 이념, 세대로 갈린 국민들은 이번 선거를 거치며 대결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여권은 독주를 거듭한 지난 3년간의 부작용을 되돌아보고 거듭 스스로를 경계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큰 권력엔 큰 책임이 따른다. 오만과 독선은 금물이다. 총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다수의 힘을 과시하기보다 다른 야당과 함께 협치에 힘써야 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총선 민심이라고 주장하는 정치론 모두의 미래를 열 수 없다. 유권자가 여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고 정권의 일방 독주에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 과거에만 매몰됐던 3년을 벗어던지고 이젠 새로운 미래로 길을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