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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5개월째 집에만…그래도 일하러 가야죠" 싱글맘 분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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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김미래씨 뒷모습(왼쪽)과 김씨 일터 책상. [사진 김미래씨]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김미래씨 뒷모습(왼쪽)과 김씨 일터 책상. [사진 김미래씨]

“학교 안 간 거로 따지면 겨울방학 때부터니까 아이들이 거의 다섯달 동안 집에만 있는 거죠. 둘이서 게임만 하고 있어요.”

[코로나 생존기] 오전 8시반 출근했다 다시 귀가 #초등생 남매 점심 주고 또 일터로 #비대면으로 보험 영업 힘들지만 #애들이 불러준 생일축하 노래에 힘내 #제 할일 하다 보면 좋은 시절 오겠죠

충남 보령에 사는 김미래(47·여)씨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10·11세 초등학생 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다. 남편과 이혼한 뒤 양육은 김씨 몫이 됐다.

한숨만 나오는 개학 연기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개학일이 미뤄진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내.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개학일이 미뤄진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내.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는 한부모 가정 김씨 집으로도 미쳤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계속 늦춰지고 학원 등원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갈 곳 없던 김씨 아이들은 집에만 있어야 했다. TV를 틀면 코로나19로 맞벌이가정의 고민이 깊어진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김씨에겐 그마저도 부러운 사정이다. “아빠가 있는 집은 아빠에 시댁 식구들도 있으니 아이 봐줄 사람이 저희보다는 적어도 두 배 많은 셈이지요. 그런 경우는 번갈아가며 아이를 챙겨주면 되니까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끼리 놀라고 하고 일을 다니고 있어요.”

보통 오전 8시 30분쯤 출근한다는 김씨는 점심때만 집에 잠깐 들른다고 했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기 위해서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기에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고 밤늦게나 집에 들어온다. 결국 점심만이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김씨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학원도 못 가고 외출도 못 하니까 점심때 빼고는 둘이 온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라며 “점심 주고 다시 출근길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고객 기피 사례 잇따르기도 

코로나19는 보육 문제만을 할퀸 게 아니다. 직접 만나는 걸 꺼리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보험업계에도 타격이 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객들이 ‘코로나19 끝나고 만나자’ ‘오지 말아라’고 하니까 힘든 상황”이라며 “비대면으로 보험 업무를 진행하며 고객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상황을 배려해 무급휴가를 권하기도 했지만 김씨에겐 사치였다. “혼자 버는데 하루라도 쉬면 손해예요. 기본금이 있는 직업도 아니잖아요. 제가 아이 본다고 쉬게 되면 가정이 무너지는 건데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출근할 수밖에 없죠.”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이제 겉으로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근무 중에도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바쁜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다. 김씨는 “이별에 훈련돼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개학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아이들을 집에만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는 아니니까 자기들끼리 있으라고 하고 집에만 뒀는데 이제는 안될 것 같다”며 “돌봄 교실에 보낼 것 같다. 온라인 개학은 또 어떡하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김미래씨는 지난달 31일 생일을 맞았다.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아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피아노를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사진 김미래씨]

김미래씨는 지난달 31일 생일을 맞았다.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아 행복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피아노를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사진 김미래씨]

엄마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고달픈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김씨는 긍정적인 기운을 잃지 않았다. 지난달 31일이 생일이었다는 김씨는 아이들이 자신을 위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요새 정말 힘들었지만, 생일케이크를 보는데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 모두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 하다 보면 이 시기도 언젠간 지나가겠죠. 희망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중앙일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알리고 싶은 사연 등을 보내주시면 기사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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