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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한국' 작곡한 폴란드의 거장 펜데레츠키 별세

중앙일보

입력

폴란드의 대표적 작곡가이자 20세기 현대음악의 중요한 음악가인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연합뉴스

폴란드의 대표적 작곡가이자 20세기 현대음악의 중요한 음악가인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연합뉴스

세계적인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가 29일(현지시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펜데레츠키는 폴란드의 대표적 작곡가로 20세기 이후 음악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고인은 1960년대 ‘음향 음악’을 선도하면서 음악사의 방향을 바꿨다. 기존의 선율ㆍ화성ㆍ리듬이라는 요소 대신 음향과 음색을 만들어내는 음악이었다. 이러한 기법을 내세우면서 20대 후반부터 전위적인 작곡가로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60년 ‘히로시마를 위한 애가’에서 현악기 52대가 불규칙한 덩어리로 소리를 만들어내도록 작곡해 음악의 전통적 개념을 변화시킨 동시에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10대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폴란드의 역사적 비극을 생애에 새겼다. 직접 겪은 전쟁, 인간들의 비인간적 행동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교향곡 3번, 성 누가 수난곡, 폴란드 레퀴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세계도 고인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그래미상 5회, 에미상 2회와 작곡계의 권위 있는 상인 그라베마이어상을 수상했다.

현대성을 극대화한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영화에도 자주 쓰였다. ‘엑소시스트’(1973), ‘샤이닝’(1980), ‘칠드런 오브 맨’(2006) 등에서 비극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에 그의 작품들이 사용됐다.

폴란드 남동부의 데비카에서 태어나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펜데레츠키는 크라쿠프 음악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졸업 이듬해인 59년 바르샤바 가을 페스티벌에서 작곡가로 정식 데뷔했다.

전위성과 혁신성을 따르던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음악의 전통을 대폭 차용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2번 등에서 그는 기존 음악에서 쓰이던 화성을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 작곡가들의 전위성이 청중과 지나치게 멀어지게 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1991년 작곡한 교향곡 5번의 제목은 ‘한국’.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위촉을 받아 만든 곡이다. “‘히로시마를 위한 애가’를 듣고 그에게 작곡을 요청했다"는 이 전 장관은 "이 세계적 작곡가가 일본을 위한 곡만 쓰고 한국을 위한 곡은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봤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강점기를 비롯해 오랜 역사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한국인의 진혼곡을 써달라”는 이 전 장관의 부탁에 펜데레츠키는 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쓴 교향곡 ‘한국’을 완성했다.

지난해 10월 성 누가 수난곡의 한국 초연을 지휘하기 위해 내한할 예정이었던 펜데레츠키는 건강이 나빠지며 한국에 오지 못했고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당시 내한을 추진했던 류재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한국과 폴란드의 비극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봤던 분이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면서 한국인들을 위로하고 싶어했다”고 기억했다. 이 전 장관 또한 지난 인터뷰에서 “세계적 작곡가이지만 동시에 따뜻한 시선을 가진 휴머니스트 예술가였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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