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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거장 펜데레츠키 후계 … 젊은 한국인이 잇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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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현대 음악의 거장 작곡가 펜데레츠키<右>와 3월에 그의 후계자로 임명되는 제자 류재준씨.

한국의 젊은 작곡가가 현대 음악의 계보를 잇는다. 주인공은 류재준(38)씨. 현대 음악의 거장 펜데레츠키(75)의 유일한 제자인 그는 오는 3월 폴란드 베토벤 페스티벌 공식 석상에서 스승의 유일한 적통임을 인정받게 된다. 18일 오전 류씨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8년 3월5일 폴란드 바르샤바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가 자신의 후계자를 공식 임명한다. 12년 째 열리고 있는 ‘베토벤 부활절 페스티벌’에서다. 펜데레츠키는 현대음악의 중요한 요소인 ‘불확정성’을 확립하며 이름을 알린 작곡가로 서양음악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비중있는 인사다.

펜데레츠키가 후계자로 임명할 인물은 한국인 작곡가 류재준 씨. 제자를 두지 않기로 유명한 이 깐깐한 작곡가가 “나를 승계할 유일한 인물”로 소개할 사람이다. 이날 류씨는 자신의 곡 ‘뉴 심포닉 레퀴엠(New Symphonic Requiem)’을 초연한다. 이어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로부터 위촉받아 펜데레츠키가 작곡한 협주곡 2번이 연주될 예정이다. 연주는 유럽 전역에 생중계 된다.

연주가 끝난 후 펜데레츠키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후계자를 발표한다. 자신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음악 축제와 연주 등의 임무를 류씨에게 넘긴다는 의미다.

#1994년 말 폴란드 크라쿠프 음악 아카데미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류씨가 이 학교 사무실로 찾아왔다. 펜데레츠키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유학을 온 터였다. “그 분은 본래 제자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그는 직접 전화를 걸어 결국 “집으로 찾아오라”는 대답을 받았다.

자신이 쓴 곡을 들고 찾아간 류씨에게 “이정도 수준의 작곡가는 이탈리아에만 수백명”이라는 말이 날아왔다. 이어 질문이 이어졌다. “대위법 (counterpoint)이 뭔가?” 류씨의 대답에 펜데레츠키는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다. 나에게 배울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류씨는 그 후로 곡을 전혀 쓰지 않고 기초에만 매달렸다. “8세기에 작곡된 악보부터 구해 전부 외웠어요. 나중에는 오페라 작품 15개 정도의 악보를 완벽하게 외워서 다시 그릴 수 있을 정도였죠.”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다시 펜데레츠키를 찾았다. 그러나 또 거절을 당했다. 거장은 “음악가 정신이 없다”는 말만 던졌다.

“눈물이 났어요. 오전 4시까지 울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드는 거에요. 전화기를 들었죠.”

새벽 전화로 “대위법은 ‘완전한 대화(full discussion)’입니다”라고 말한 그를 스승은 드디어 받아들였다. “며칠 후 여권과 짐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나오라”는 말과 함께였다. 그렇게 그는 2년동안 펜데레츠키와 함께 세계를 돌았다. 세계 각국에서 음악을 들으며 중요한 인물을 함께 만났다.

“한번도 작곡 레슨을 엄격하게 받은 적은 없어요. 그저 음악의 치열한 현장에서 배운 셈입니다.”

류씨는 이후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지휘), 볼프강 자발리슈(지휘), 막심 벤게로프(바이올린) 등과 함께 작업했다. 이들은 그에게 곡을 위촉하고 직접 초연해 녹음하는 계획을 잡았다. 지난해에는 음반사 낙소스(Naxos)와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1988년 서울 현대고등학교

고등학교 3학년이던 류씨는 갑자기 작곡가를 꿈꿨다. “치열하게 사는 데 작곡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의 반대로 집에서 쫓겨나면서까지 공부했어요.”

서울대 작곡과에 덜컥 입학하고 난 후에는 학점이 1.0을 밑돌았다. “관심사가 지나치게 넓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떠난 후 음악학은 물론 심리학 박사까지 땄다. 물리학 학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그의 현재 관심사는 ‘사업’에도 뻗어있다.

“저 2004년 수원대학교 교수로 초빙된 후 1년만에 그만 뒀잖아요. 악기 연주만을 가르치는 한국 음악계의 현실을 바꾸고 싶어요. 교육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글·사진=김호정 기자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전후(戰後)에 활동한 그는 현대음악의 중요한 기법을 확립했다. 그의 출세작 ‘애가:히로시마의 희생자들에게’(1960)의 악보에는 동그란 머리의 음표 대신 굵은 줄이 그어져있다. 근접해있는 몇 개의 음을 한꺼번에 음군(音群, tone cluster)으로 연주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연주자가 재량으로 연주하는 불확정성은 그가 확립한 중요한 개념이다. 70년대 이후에는 선율과 협화음 등 고전·낭만시대의 요소를 중시하며 특유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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