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漢字, 세상을 말하다] 貽笑大方<이소대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9호 35면

한자세상 3/28

한자세상 3/28

황하(黃河)를 다스리는 강의 신 하백(河伯)이 북쪽 바다의 신 해약(海若)을 만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음을 토로한다. “당신의 무궁한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여기 오지 않았다면, 대가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吾長見笑於大方之家).”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의 첫 구절이다. ‘당할 견(見)’을 영향을 끼치다는 한자 이(貽)로 바꾼 성어 이소대방(貽笑大方)의 출처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전염병 전문가 위안궈융(袁國勇) 홍콩대 교수가 중국에 “이소대방 말라”는 글을 써 논란에 휩쓸렸다. 지난 18일 명보(明報)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우한(武漢)에서 시작, 17년 전 교훈을 잊었다”고 쓴 칼럼에서다. 위안 교수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코로나바이러스임을 밝혀낸 ‘사스 영웅’이다.

칼럼은 도발적이다. 우선 “싱가포르·홍콩·마카오와 중화민국은 팬데믹을 피했다”며 대만을 중화민국으로 적었다.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혹은 우한폐렴으로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의 용어 선택은 소통에 편리하면 된다는 이유다. 미국 유래설도 부정했다. “인터넷의 바이러스 미국 전래설은 전혀 증거가 없고, 자기를 기만하고 남을 속이는 일”이라며 비웃음당하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사스 영웅’ 중난산(鐘南山) 중국 공정원 원사는 달랐다. “중국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중국이 발원지는 아니다”며 중국 기원설을 부정했다. 애국주의로 무장한 중국 네티즌은 위안 교수를 맹공격했다. 명보는 다음날 “본인을 정치에 끌어들이지 말고 연구 공간에 남게 해 달라”는 위안 교수의 유감을 전하며 칼럼을 철회했다. 표현의 자유와 과학이 정치에 굴복했다.

2009년 국가전복선동죄로 11년 형을 선고받은 류샤오보(劉曉波)는 법정 최후 진술을 남겼다. “제가 중국에서 끊이지 않았던 문자옥(文字獄) 최후의 피해자이길 바랍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기초이며 인성의 근본이자 진리의 어머니입니다. 언론 자유를 말살하면 인권은 짓밟히고 인성은 질식하며 진리는 억압됩니다.”

이듬해 노벨평화상도 류샤오보의 꿈을 돕지 못했다. 위안 교수가 철회한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전염병 전쟁에서 승리를 바란다면 반드시 진실 앞에 서야 합니다. 이런 태도라면 십 년쯤 뒤 사스 3.0이 반드시 출현할 것입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장·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