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영난을 버티지 못한 상가들이 경매시장에서 헐값에 팔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경매까지 덮쳤다. 법원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 23일까지 감정가의 20% 미만에 팔린 상가가 서울에만 10곳에 이른다. 감정평가 가격이 1억원이면 2000만원에 못 미쳐 낙찰됐다는 얘기다.
5000만원 동대문 점포가 570만원 #아파트 경매는 아직은 경쟁 치열
의류 쇼핑몰로 유명한 서울 동대문 굿모닝시티쇼핑몰의 6층 점포(7.3㎡)는 지나 2월 570만원에 팔렸다. 2년간 10차례 유찰되면서 감정가 5000만원의 11% 수준까지 급락했다. 같은 달 인근 밀리오레 지하 2층 점포(4.2㎡)도 9차례 유찰 끝에 1122만원에 팔렸다. 감정가(7800만원)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쇼핑몰 상가는 2~3년 전부터 경기침체와 온라인 소비 확산으로 얼어붙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오명원 지지옥션 연구원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폐업 신고하는 상인이 늘고 있어 경매로 나오는 상가는 더 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물이 쌓이면 낙찰 가격은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감정가의 5% 수준까지 떨어진 뒤 낙찰된 사례도 있다. 서울 구로동 신도림테크노마트 1층 점포(면적 10.2㎡)는 감정가 2억1700만원의 5%인 1040만원에 올 초 낙찰됐다. 3년간 14번이나 유찰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이달 전국 상가의 매각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56%로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7월 74%에서 급락한 것이다. 여기가 끝이 아닐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46%(2009년 1월 기준)까지 떨어졌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동대문 쇼핑몰처럼 수십 개의 점포가 모여 의류나 전자기기를 파는 곳은 이미 온라인 쇼핑에 치여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싼 값에 혹해 투자했다가는 임대료는커녕 관리비도 못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상가와 달리 아파트는 아직 충격을 받지 않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달 말부터 2~3주간 휴정에 들어섰던 전국 법원이 지난주부터 서서히 경매를 재개했다. 지난 16일 의정부시 녹양동 녹양힐스테이트(전용 85㎡)가 경매에 나오자 73명이 입찰에 참여했다. 이곳은 치열한 경합 끝에 감정가(2억7000만원)의 98%인 2억6545만원에 팔렸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오래 가면 아파트도 버티기가 쉽지 않다. 경제가 침체하면 소득이 줄거나 실업률이 늘면서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대출자가 늘 수 있어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아파트 경매도 상가처럼 매물이 늘고 유찰이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하반기부터 코로나 여파가 경매시장에 본격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본다. 법원의 경매 결정부터 부동산 감정평가와 신문공고 등 매각을 준비하는데 6~7개월(수도권 기준)이 걸리기 때문이다. 곽종규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변호사는 “코로나로 인한 경기 악화로 경매 물건의 권리관계를 둘러싼 다툼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