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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中바이러스’ 고집···애꿎은 아시아계만 전전긍긍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종 코로나 대응 일일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종 코로나 대응 일일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9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 여성 기자가 손을 들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지목했다. 옆에 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OANN 기자야”라고 부연 설명까지 해줬다. OANN은 ‘원 아메리카 뉴스 네트워크’의 약자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극단적 보수 성향의 매체”다.

 OANN 기자는 “대통령님, ‘중국 음식’이라는 말이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를 대통령님이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을 문제 삼는 일부 극좌 매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두고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고 명명한 것을 두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CNN 등 다수 언론 매체들이 “인종 차별적인 명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OANN 기자의 이날 질문은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CNN 등을 비난하는 질문인 셈이다.

앞서 “중국에서 왔으니 중국 바이러스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고 되풀이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내 발언은 틀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OANN의 샤넬 라이언 기자는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지난 19일 백악관 신종 코로나 대응 일일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를 옹호하는 취지의 질문을 하고 있는 OANN의 샤넬 라이언 기자.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백악관 신종 코로나 대응 일일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를 옹호하는 취지의 질문을 하고 있는 OANN의 샤넬 라이언 기자.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라는 단어 선택이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네이밍(namingㆍ별칭 붙이기) 전략으로 유명하다. 귀에 쏙 들어오고 쉽지만, 당사자 또는 당사국엔 논란이 되는 네이밍이다. 일례로 오랜 악연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겐 “미친 낸시”,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적수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두고는 “잠꾸러기 조”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를 두고는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러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포함한 중국 각계각층의 반발을 샀다. 세계보건기구(WHO)도 18일(현지시간)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지만 허사였다.

19일 기자회견에서도 ‘중국 바이러스’는 화제였다. OANN 이외에도 다수의 기자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왜 계속 쓰는가” 또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네이밍이 미ㆍ중 관계에 미칠 파장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답변하기 싫다”라거나 “노코멘트 하겠다”고 일축했다. CNN의 크리스토퍼 쿠오모 앵커는 18일(현지시간) “‘중국 바이러스’라는 인종차별적 명칭은 미국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끄러운 행위”라고 비난했다.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종 코로나 대응 일일 브리핑에서 텔레비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비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종 코로나 대응 일일 브리핑에서 텔레비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비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분위기 속에 애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공격이 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중국 전문 영어 매체인 섭차이나(SupChina)의 카이저 쿠오 편집장은 19일 중앙일보에 “(아시아계) 식당은 공격을 당하고, (아시아계에게) 침을 뱉는 일도 일어나고 있고 욕설까지 들리는 상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라는 말이 치명적이었다”고 말했다.

쿠오 편집장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거주하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문제는 중국계를 넘어 동북아시아계 미국인 전체에게 이런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기자들의 모임인 AAJA는 이에 19일(현지시간) “인종차별적인 ‘중국 바이러스’라는 명칭에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까지 냈다. AAJA는 성명서에서 “인종차별적인 ‘중국 바이러스’라는 명칭이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적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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