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떨어지는데 보유세 폭탄, 세입자도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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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세 9억원 이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보유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크게 올렸다.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은 평균 14.75% 올라 1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강남구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시세 9억원 이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보유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크게 올렸다.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은 평균 14.75% 올라 13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강남구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아파트 공시가격 인상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들이 최근 전·월세 시세를 묻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이들은 기존 세입자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전셋값을 올리거나 반전세로 돌릴 수 있을지 물었다. 서초구 방배동 삼성공인중개사무소의 나순희 사장은 “수십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자산가들이 세금 얼마 오른다고 서둘러 집을 팔지는 않는다”며 “세금으로 낼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월세를 올리면 세입자가 피곤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9억 이상 공시가 대폭 상승, 시장은 #“코로나·거래절벽 상황에 속만 끓어” #“집주인 세금 내려 전·월세 올릴 것” #저금리에 급매물 확 늘진 않을 듯 #9억 이하 돈 몰려 풍선효과 전망도

같은 날 강남구 대치동 국민은행 대치자문센터에서 일하는 임채우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고액 자산가 고객들의 아파트 증여 상담으로 바쁜 오후를 보냈다. 현시점에서 자식 등에게 아파트를 증여할 경우 얼마나 절세 효과가 있는지 묻는 내용이 많았다. 임 위원은 “보유세 부담이 커질 때 고가 아파트 소유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며 “계속 보유가 아니라면 주택 매도나 임대사업자 등록, 증여의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임대사업자 등록의 혜택이 거의 없다”며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팔고 양도소득세를 내는 것보다는 자식에게 넘겨주고 증여세를 내는 게 부담이 덜할 수 있다”고 전했다.

확 줄어든 서울 아파트 거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확 줄어든 서울 아파트 거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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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억원 이상 아파트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주택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구별로는 서울 강남구가 25.57% 올랐고 서초구(22.57%)·송파구(18.45%)의 순이었다. 양천구(18.36%)와 영등포구(16.81%)도 비교적 많이 올랐다. 서울 강북 지역도 보유세 급등을 피하지 못한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전용면적 84㎡)는 올해 처음으로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어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올해 공시가격은 10억8400만원으로 전년보다 25% 올랐다. 이 집의 소유자는 종부세를 포함해 354만원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초강력 대출 규제를 담은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가 덮쳐 주택 거래가 얼어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11월의 68% 수준에 그쳤다. 공시가격 상승률이 높은 5곳(강남·서초·송파·양천·성동구)의 거래량은 석 달 전의 38% 수준이다. 집값 하락세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일까지 강남·서초구 아파트값은 각각 0.37% 떨어졌다. 송파구는 0.45% 내렸다.

아파트값 상승률과 비교해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강남구 개포동에 아파트를 보유한 한모(69)씨는 “코로나19와 거래절벽으로 집값이 내려가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은 미뤄주면서 ‘보유세 폭탄’은 떠안기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75%로 내리는 등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른바 ‘절세 매물’이 확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는 기한인 오는 6월 직전에는 절세 매물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로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 급매물이 쏟아지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여파로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까지 위축하지 않도록 종부세 인상 시기를 1년 정도 늦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 떠도는 돈이 9억 이하 아파트로 몰리는 ‘풍선효과’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세금 부담은 피하면서 입지 조건이 좋은 6억~9억원 이하 아파트의 몸값이 오를 수 있다”며 “고가 아파트는 급매물보다는 증여가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현주·염지현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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