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의한 중국 대륙의 사망자가 11일 자정 현재 3169명을 기록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2일 발표에서 11일 하루 1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리원량 동료 의사인 아이펀 주임 #최근 잡지 ‘인물’과의 인터뷰에서 #사태 초기 우한시 은폐 사실 폭로 #당국이 인터넷서 해당 글 삭제 #분노한 네티즌, 각종 부호 동원해 #인터뷰 주요 내용 전파하며 저항
3169명의 사망자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자식으로 부모에 효를 다했고 아비로서 아들에게 책임을 다했으며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했고 사람으로서 성실을 다했지만, 몸을 누일 병상을 못 찾고 끝내 작별을 고한다.” 영화인 창카이(常凱)가 남긴 먹먹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신종 코로나 사태를 최초 폭로했지만, 경찰의 훈계를 받아야 했고 마침내 자신마저 감염돼 임신한 아내와 아들을 두고 34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아야 했던 의사 리원량(李文亮) 스토리는 중국과 전 세계를 울렸다.
중국 당국은 리원량의 사후 한 달이 다 돼가던 지난 5일 그에게 ‘방역 모범 인물’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하자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내부 고발의 정신은 리원량을 모범 인물로 치켜세운 지 일주일도 안 돼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알쏭달쏭 각종 부호가 전혀 변하지 않는 중국 당국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중국 대중의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총편집 후시진(胡錫進)은 11일 저녁 “오늘 인터넷에서 삭제된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 문장 대신에 등장한 각종 판본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삭제된 문장은 뭔가. 리원량의 동료 의사인 아이펀(艾芬) 우한시 중심병원 응급실 주임이 중국 잡지 ‘인물(人物)’과 가진 인터뷰다. 주요 내용은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가 정보 공개를 금지하는 지시를 내려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아이 주임은 병원 기율위원회로부터 ‘소문을 유포했다’는 질책도 받았다고 밝혔다. “마치 내가 우한의 발전을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비판을 받았다”며 “절망적이었다”고 토로했다. 사태 초기 은폐와 기만으로 일관한 시 당국의 처사를 비난한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이젠 어느 정도 다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은 이 같은 인터뷰가 언론에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인물’ 잡지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에 오른 이 글을 삭제하는 행태를 보였다.
현재 중국의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를 통해선 이 글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중국 당국의 고질적인 언론 검열이 이뤄진 까닭이다. 리원량 사후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중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삭제 조치 이후 인터넷엔 인터뷰 내용을 담은 각종 부호가 뜨기 시작했다는 게 후시진의 이야기다. 그가 소개한 몇 가지 중 첫 번째엔 숫자와 각종 문양, 한자가 뒤섞여 있다. 중국 네티즌이 아이펀의 인터뷰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 고안한 암호에 해당한다.
수수께끼 같은 암호의 내용은 대략 “2019년 12월 30일 아이펀은 원인불명 폐렴 환자의 바이러스 검사보고서를 받았는데 ‘SARS 코로나바이러스’란 글자가 있었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전파하다 경찰 훈계를 받은 사람 중엔 동료 등 8명의 의사가 있었다” 등이다.
인터뷰의 두 번째 판본은 중국어 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한어병음(漢語拼音)을 이용한 방식이다. 한어 병음을 읽으면 뜻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컴퓨터의 데이터 표시 방법도 동원했다.
10진법과 달리 0-9와 A-F 조합으로 구성하는 16진법(Hex number system)으로 아이펀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또 중국 고대 갑골문(甲骨文)으로 인터뷰 주요 내용을 적은 것도 있다고 후시진은 설명했다.
모든 게 당국의 검열에 맞선 네티즌의 처절한 저항이다. 후시진은 이 같은 네티즌의 몸부림을 “불만 정서를 표출하는 일종의 ‘인터넷 행위 예술’ 아니냐”며 글이 비록 삭제는 돼도 내용은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완전히 삭제되는 건 아니란 '기이한' 해석을 내놓았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은폐와 기만으로 일관하던 위생부장의 거짓말을 용기 있게 폭로한 이가 장옌융(蔣彦永) 중국 해방군 301 병원 의사였다. 장옌융은 현재 맹활약 중인 중난산(鍾南山) 중국 공정원 원사와 함께 사스 퇴치의 두 영웅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중국 언론에서 지워진 상태다. 리원량 경우를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인 장옌융은 현재 철저하게 잊혔다. 리원량 또한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니 ‘모범 인물’ 칭호를 부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 벌써 리원량 동료 의사의 폭로가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