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구권 경제현황과 교류전략|"자본주의 실험은 인플레 극복이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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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 사회주의 식 자본주의 실험이 한창이다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창, 개혁에 나서는가 하면 동구권국가들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헝가리의 경우는 국호를 아예「헝가리 공화국」으로 바꿔버리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체제의 도입은 투자재원부족·인플레·물가불안 등 반드시 해결해야할 난제를 겹겹이 쌓아놓고 있다. 동구권의 경제현황과 우리의 진출방안을 중간 점검해 본다.<김석환 기자>

<소련>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내건 이래 정치분야에 있어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경제분야에 있어 페레스트로이카는 아직까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아르메니아 지진사태 등으로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수해야 했으며 주요 수입원인 원유 가가 하락, 재정적자를 심화시켜 경제정책이 차질을 빚어왔다.
물가는 고르바초프 집권이래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공급부족사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통화량이 증대되었고 이는 가뜩이나 살 물건이 부족해 막대한 양의 예금을 쌓아놓고 있는 민간부문의 자금보유고만 증대시켰다.
넘쳐흐르는 돈은 물가상승을 부채질해 소련의 개혁정책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있다.
최근 소련의 공식적인 통계들은 고르바초프 집권이래 연 9%이상 되는 물가상승을 보여주고 있으나 서방전문가들은 물가상승률이 이보다 훨씬 높아 30%에 이를 것이란 추정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이 살 물건은 부족한데 돈은 넘치고 공급부족사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현재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소련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으로 보고있다.
소련도 현재 풀린 돈을 거둬 물가상승을 안정시키는 것이 경제개혁의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하고 이의 해소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90년도 예산안도 물가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방안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로 공급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방위산업시설을 민간소비재 생산용으로 전환시켜 생산기반을 증대시키고 이와 동시에 6백억 루블 상당의 만기 10년, 연리 5%짜리의 장기국채를 발행, 민간부문에 과도하게 떠돌아다니는 돈을 흡수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또 구입대금을 선불한 다음 일정기간이 경과된 후 물품을 인도 받는 새로운 상품거래제도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소련국민들은 이미 50년대에 국채상환 불이행을 경험한 바 있어 정부의 국채발행계획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실체로 소련국민들의 공식적인 예금보유고 외에도 민간부문 자금의 약40%(1천5백억 루블)에 달하는 현금이 제도금융권 밖에서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야도 이러한 점을 들어 재무부의 장기국채 발행계획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급진적인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 개혁파 경제학자들의 처방이 최근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다.
가령 슈엘료프 같은 이는 1백50억 루블 상당의 소비재를 서방세계로부터 추가로 수입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슈멜료프는 최고 10배까지 과대 평가되고 있는 루블화의 실정을 감안할 때 소비재를 긴급히 수입, 수요를 충족시키면 약 1천5백억 루블 상당의 시중에 떠도는 돈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론적 지주인 아간베기얀 같은 경제학자는 새로 건설하는 공공임대주택을 민간에 매각하고 은행의 예금금리를 인상시켜 민간부문의 통화량을 흡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택할 경우 최소한 1천2백억 루블 정도의 통화를 흡수할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서방전문가들의 처방은 조금 다르다.
지난 9월 미연방준비이사회(FRB)는 금으로 교환성을 확보할 수 있는 루블화를 창출할 것을 권고했다.
즉 현재 국제적인 태환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루블화의 국제태환성을 즉각적으로 확보하면서 국내적으로는 새 화폐에 대한 신용을 증대시켜「돈보다는 물건」이라는 환물 심리를 동시에 잠재우자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소련이 세계 제2위의 금 생산국이고 현재도 3백억∼4백억 달러 상당의 금을 보유하고있기 때문에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방식을 종합적으로 사용, 통화의 과도한 공급상태를 해소하고 단계적인 가격자유화정책을 시도, 소련소비자 경제의 시장원리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동안 소련은 가격을 자유화할 경우 물가의 급상승을 초래해 경제개혁의 기반자체가 무너질까 두려워 해왔다.
그러나 만성적인 공급부족상태의 개선 없이 현행제도를 밀고 갈 경우 광산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노동시장의 불안이 확산될 우려가 있어 소련경제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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