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심각' 한국 금리 동결...여유로운 미국은 인하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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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한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4일 오후 기준)다. 그런데 한국은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미국은 인하했다. 언뜻 바뀌어야 맞을 듯한데 양국 중앙은행의 판단은 달랐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미국 경제 펀더멘털은 여전히 강하지만 코로나19가 경제 활동에 점차 위험을 가하고 있다”며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지만, Fed는 향후 경제적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금리인하가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대응임을 밝힌 것이다.

당초 시장은 금리를 낮추더라도 오는 18일 열릴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결정할 거로 봤다. Fed는 신속하고 과감했다. 약 2주 빨리 긴급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0.25%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하는 관례(그린스펀의 베이비스텝)도 벗어나 0.5%포인트를 한 번에 내렸다. 긴급회의에서 금리를 결정한 것도, 0.5%포인트를 선택한 것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이다. 사태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은행 기준금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처지만 보면 한국이 훨씬 심각하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각각 5000명, 3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 수가 중국 다음으로 많고,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르다. 내수·수출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각 경제 주체가 사실상 제 활동을 멈췄다. 1분기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지난달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Fed의 판단이 옳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낮은 금리가 코로나19의 즉효약은 아니다. 인하 효과 또한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오히려 Fed의 긴급회의, 0.5%포인트 인하 같은 너무 큰 액션이 시장의 공포를 자극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로 Fed의 발표 직후 뉴욕 증시는 크게 출렁였다. 3일(현지시간) 다우존스산업지수 전날보다 785.91포인트(2.94%) 떨어진 2만5917.41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나스닥종합지수도 각각 2.81%, 2.99% 급락했다.

한은은 ‘3월 정점’, Fed는 ‘글로벌 확산’ 무게 

그런데도 Fed가 선제적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본 건 이탈리아·이란 등 중국 외 지역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서다. 단순히 미국 내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받을 충격이 상당하고, 꽤 길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파월 의장은 “주요 7개국(G7) 성명을 통해 다른 선진국과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한은이 국내 상황만 고려해 동결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2월 금통위 결정의 핵심 전제는 ‘3월 중순 정점설’이었다. 당일 이주열 한은 총재는 “코로나19가 3월 중 정점에 이르고 이후 진정될 것이란 전제를 바탕으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진정되더라도 해외 확산이 빨라지면 그 또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 익명을 원한 한 연구원은 “기준금리 자체는 내수용이지만 기준금리를 결정할 땐 국내외 경제 상황을 두루 살펴야 한다”며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의 교역 상대, 경쟁 상대는 모두 해외에 있는데 국내만 보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전불가피한경제심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장기전불가피한경제심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물론 동결 결정엔 한국만의 특수한 사정도 있었다.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 버블을 부추길 수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잡기 위해서 정부가 대책을 총동원하는 상황에서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또 금리가 낮아지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다(원화가치 하락).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총재가 여러 차례 “한국은 기축통화국(미국·유로존 등)보다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이유다.

일단 미국은 전격적으로 금리를 낮췄다. 일각에선 한은이 다음 금통위 정례회의(4월 9일) 전에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인하에 동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던 2008년 10월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사상 최대 폭인 0.75%포인트 인하했다. 하지만 이는 일주일도 안 돼 스스로 결정을 뒤집는 것인 데다, 임시 금통위 자체가 ‘금융위기급 충격’을 내포하는 것이어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달 27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27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 총재도 선을 그었다. 4일 오전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한 그는 “금리인하보다는 선별적인 미시적 정책수단을 활용해 취약 부문은 집중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금융중개지원자금을 5조원 증액하기로 한 것을 재차 언급하면서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미국 정책금리가 국내 기준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고, 향후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이와 같은 변화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하 가능성 자체는 열어둔 것이다.

양국 기준금리 비슷해져…4월 인하 가능성 커져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는 “Fed가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의 글로벌 영향을 말하지만 이번 인하는 급락하는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며 “한은의 (동결 결정이) 실기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Fed가 예상대로 FOMC에서 0.25%포인트만 인하했다면 한은 입장에서 4월 인하가 고민스러웠겠지만, 워낙 전격적인 조처를 했기 때문에 추가 인하에 대한 부담은 줄었다”며 “부동산 시장에 대한 판단에 따라 4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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