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규제? 까짓 거 대충"…요리조리 피하는 유통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2020.03.04 05:00

업데이트 2020.03.13 17:12

정부 규제 틈새 파고드는 기업들 

#.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랄라블라 우장산역점. GS리테일이 직영하는 헬스엔뷰티(H&B) 매장이지만, 입장하면 편의점이 연상된다. 매장 왼편 식음료 코너는 삼각김밥과 도시락, 음료수 등 편의점 제품을 판매한다. 편의점처럼 의자·테이블 등 취식 공간도 마련했다. 이 매장은 왼쪽으로 개인점주가 운영하는 씨유(CU) 편의점과 맞닿아 있다.

공정한 유통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정부가 도입한 유통관련 지침·규제를 업계가 우회하는 상황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사각 지대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법을 지키는 쪽이 바보’라는 자조(自嘲)도 나온다.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매장. 편의점과 바로 마주 붙어있다. 문희철 기자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매장. 편의점과 바로 마주 붙어있다. 문희철 기자

정부는 2018년 12월 자율협약 형태로 편의점에 근접 출점을 제한했다. 이후 편의점 업계는 50m(농촌)~100m(도시) 이내에 신규 매장 출점을 자제하고 있다.

편의점 출점이 어려워지자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은 자사의 H&B 스토어(랄라블라)에 유사 편의점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한다. 법적으로 편의점이 아닌 매장에서 편의점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매장은 실내에 편의점처럼 간이 취식대도 마련했다. 문희철 기자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매장은 실내에 편의점처럼 간이 취식대도 마련했다. 문희철 기자

랄라블라 우장산역점같은 H&B 스토어가 대표적이다. 랄라블라 우장산역점과 이웃한 편의점 씨유(CU)를 운영하는 점주 이강 씨는 “매일 새벽 GS25 유니폼을 입은 본사 직원이 랄라블라 우장산점에 와서 맥주·우유·샌드위치 등 편의점 제품을 두고 간다”며 “GS25라는 편의점 간판만 안 내걸었을 뿐 사실상 편의점”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GS리테일은 “H&B스토어를 방문하는 소비자가 식품도 구입을 원하기 때문에, 소비자 요구에 부응했다”며 “매장 융·복합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롯데슈퍼가 시범운영 중인 ‘델리카페’도 비슷하다. 델리카페는 편의점처럼 컵라면·도시락·삼각김밥 등을 판매한다. 테이블·전자레인지 등 취식·조리 공간도 있다. 델리카페 1호점은 인근 50m 이내에 편의점이 2개다(CU·GS25). 델리카페 2호점도 바로 맞은편에 편의점(세븐일레븐)이 있다. 이에 대해 롯데쇼핑은 “편의점과 상품군이 일부 겹치긴 하지만, 델리카페와 편의점은 콘셉트가 명확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매장 실내. 얼핏 보면 편의점과 큰 차이가 없다. 문희철 기자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매장 실내. 얼핏 보면 편의점과 큰 차이가 없다. 문희철 기자

“법 준수하는 곳만 피해” 

롯데슈퍼가 운영하는 즉석식품 판매점 델리카페(노란색). 인근 50m 이내에 편의점이 2개다(빨간색). 네이버지도 캡쳐

롯데슈퍼가 운영하는 즉석식품 판매점 델리카페(노란색). 인근 50m 이내에 편의점이 2개다(빨간색). 네이버지도 캡쳐

이마트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려 소송 중이다. 이마트는 편의점 사업을 하는 자회사 이마트24를 보유하고 있다. 이마트24 편의점은 근접출점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이마트는 이마트 24 일부 매장 인근에 이마트가 운영하는 자체 브랜드 매장인 노브랜드를 운영한다. 이 때문에 김경식 이마트 24 울산 성남점주 등은 이마트가 가맹사업법을 위반했다며 소송 중이다. 가맹사업법 12조의4 3항은 ‘가맹본부는 가맹사업자의 영업지역 안에 동일한 업종의 자기회사·계열회사의 직영점·가맹점을 설치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이마트는 “이마트24와 노브랜드는 업태가 다르다”며 “대법원에 계류돼있긴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마트가 승소했다”고 설명했다.

계상혁 전국편의점연합회장은 “편의점 전용 제품을 H&B스토어·빵집에서 판매하거나, 대기업 계열사가 편의점 인근에 출점하는 건 가맹사업법 위반 소지가 크다”이라며 “제도권 안에서 규제받는 업종만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규제의 허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위 기사엔 유사 사례로 생활협동조합 관련 내용이 있었으나, 생협 측 해명이 중앙일보 애초 보도와 일부 다른 점이 있어 관련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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