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뒤늦은 ‘전쟁’ 선언…마스크·병상·인력 부족부터 해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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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코로나19 확진자가 5000명을 넘어서면서 마스크와 병상 및 의료 인력 부족 사태가 가중되고 있다. 이런 절박한 문제들을 다루는 정부의 대응 방법과 능력을 지켜보면 ‘코로나 국난(國難)’에 임하는 절절함이 아직도 잘 보이지 않아 실망스럽다.

5000명 확진되자 대통령 “감염병과의 전쟁 돌입” #대구시장과 의협, 대통령 긴급명령권까지 건의 #김상조 실장, 국민에 “마스크 수요 줄이라” 궤변

정치·종교 집회 등 다중이 모이는 행사를 금지한 정부가 마스크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바람에 수많은 군중이 한곳에 밀집하도록 만든 게 대표적이다. 사회주의식 배급 시스템을 시험할 의도가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아마추어들의 원시적 행정이다. 그제 대구에서 한 확진자가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다”며 일반인들 사이에서 줄을 선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방송에 보도됐다. 대구와 경북 경산을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더니 가장 피해가 큰 대구에서 확진자조차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대구·경북에는 병상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자택에서 대기하다 희생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도 1800명가량의 확진자가 병상을 구하지 못해 자택에서 애태우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은 밀려오는 환자를 감당하기에 벅차 쓰러질 지경이다.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을 호소한다. 마스크는 물론이고 병상 및 의료진 부족 사태는 감염병 특별관리지역 지정으로도 해결이 어려운 형국이다. 낡은 매뉴얼에 의존하지 말고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특단의 대책을 써야 한다.

그제 권영진 대구시장이 급기야 헌법 76조에 있는 ‘대통령 긴급명령권’ 발동을 건의했다. 미래통합당과 대한의사협회도 어제 “현 상황을 준(準)전시 상태로 규정하고 경증 환자 집중 관리가 가능한 병리시설 확보 및 의료 인력·장비의 집중 투입을 위해 헌법과 감염병 관리법상 긴급명령권을 즉각 발동하라”고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국가 전체가 감염병과의 전쟁에 돌입했다”며 “정부의 모든 조직을 24시간 긴급 상황실 체제로 전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1월 하순에 전쟁을 선언했는데 우리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은 긴급명령권에 준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른 지자체와 군 병상 및 민간 연수원 시설을 동원하고, 군의관과 민간 의료진 등을 추가로 다급한 대구에 투입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게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그런데 같은 날 김상조 대통령 정책실장은 “인구 1인당 마스크 생산량은 세계 최고”라면서 마스크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발언해 빈축을 사고 있다. 좋은 집에 살려는 국민의 정당한 주거 수요를 억제하면서 주택 공급은 제때 늘리지 않은 엉터리 부동산 정책 때문에 집값만 폭등시킨 이 정부 당국자들이었다. 이번엔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사려는 국민에게 수요를 줄이라고 엉뚱한 요구를 한다. 그렇게 말할 자격조차 있는지 묻고 싶다.

110여 개 업체가 하루 1200만 장을 생산해도 실수요자가 마스크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공급 부족 등보다 아마추어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이 지금 가장 큰 문제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이 정부의 슬로건이 너무도 공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