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일제 식민지 기를 잇는 전통 서화전 잇따라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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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을철을 맞아 각종 현대미술관련 전시회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구한말에서 일제식민지기를 잇는 한국근대미술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전통서화전이 잇따라 열려 고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성미술문화재단주최로 12월 10일까지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산수화 4대가 전」,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2주일 동안 간송미술관이 마련하고있는「운당 민영익 특별 전」, 27일부터 11월 3일까지 고서화전문화랑 학고재가 개최를 준비중인「구한말의 그림 전」등.
호암미술관의「산수화 4대가 전」은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등 한국근대회화의 단초를 연 주역들로 평가받는 4대가의 산수화만을 골라 마련한 전시회로 호암미술관 자체 소장품에다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홍익대박물관 등 국내 유수의 공사립미술관과 기타 개인소장 가들의 찬조를 받아 청전 작품 21점, 의재 16점, 소정·심산 각19점 등 모두 75점을 내걸고 있다.
『한국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위상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현대한국화의 지향점을 모색하기 위해』마련된 이 전시회는 개인별로 전시실을 따로 구획하고 작품들도 초기부터 말년의 것을 연대순으로 배치, 이들 대가들의 작품세계 변모와 예술적 성취의 진면목을 한눈에 헤아려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간송미술관이 자체수장 품 중에서 간추려 마련한「운당 민영익 특별 전」에는 조선조 최후의 문인화가로 꼽혔던 운당 민영익의 난초그림 29점과 묵죽·석죽 등 대나무그림 6점, 글씨 1점등이 선보이고 있다.
운당 민영익은 고종 비 명성황후 민씨의 친정 조카로 황후의 비호아래 기울어져 가는 한말정국을 한 손에 요리하던 척신정객.
그는 추사 김정희의 내당질로 추사문하에서 학예를 익힌 생부 정표 민태호와 숙부 황사 민규호로부터 가학을 전수 받아 15세 전후부터 이미 서화로 세상에 이름을 드날렸던 천재 예술가였다.
세도재상으로서 혼미한 정국에 휘말려 학예에 전심할 틈을 찾지 못하던 그는 그후 민비가 일인들에게 살해되는 을미사변을 맞자 중국상해로 망명, 그곳에 천욕죽재라는 교거처를 마련하고 사란사죽과 시서에 몰두하면서 만년의 예술을 꽃피웠다.
『격을 살리기가 가장 어렵다』는 사회에 특히 빼어난 재능을 보여『석파(대원군)의 춘란, 운당의 건란』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운당 민영익의 이번 유묵특별 전에는 추사와 운당의 아버지 민태종 및 숙부 민규호의 작품 각1점씩이 함께 전시됐다.
27일부터 고서화 전문화랑 학고제에서 개최되는「구한말의 그림 전」에는 오원 장승업에서 춘곡 고의동에 이르는 구한말기 화가28명의 작품 40여 점이 출품될 예정이다.
「구한말의 그림 전」은 19세기후반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전통사회의 일각이 무너지면서 서구문명에 의한 개화의 바람이 휘몰아치던 일대변혁기인 구한말에 초점을 맞춰 기획된 전시회.『한국근대미술의 맹아기에 해당하는 새로운 자료들이 다수 출품될 예정이어서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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