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단체 헌혈로 고비 넘겼지만 안정적 수급대책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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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혈액 수급난 해소를 위해 서울시 공무원들이 17일 서울광장을 찾은 대한적십자사 헌혈 버스에서 헌혈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혈액 수급난 해소를 위해 서울시 공무원들이 17일 서울광장을 찾은 대한적십자사 헌혈 버스에서 헌혈하고 있다. [뉴스1]

“지정 헌혈해주실 분 구합니다.”

코로나로 206개 단체 헌헐 취소 #혈액 보유량 3일분까지 떨어져 #전국 헌혈 릴레이로 4일분 넘겨 #“지자체서 헌혈추진협 구성해야”

지난 18일 A씨는 지인 부탁을 받고 글을 쓴다며 ‘지정 헌혈’을 요청하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는 “지인 아버지가 위독한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혈액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정 헌혈을 해주면 사례하겠다”고 했다. 지정 헌혈은 환자가 직접 헌혈자를 데리고 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온라인에는 지정헌혈자를 찾는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코로나19 여파가 헌혈 감소로 이어지면서부터다.

개인 헌혈자 수 변동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개인 헌혈자 수 변동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혈액 보유량이 적정치를 채우지 못할 경우 병원마다 충분한 혈액이 없어 우선순위를 정해 환자들에게 혈액을 공급해야 해서 벌어진 현상이다.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에서 만난 한 간호사는 “병원에서 피가 없다 보니 환자 가족에게 지정 헌혈을 해오라고 한다”고 전했다.

20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0~16일까지 일주일 동안 2894건의 지정 헌혈이 이뤄졌다. 이는 지난해 2월 2629건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20일 경기혈액원 혈액 냉장고에 보관된 혈액 주머니들. 채혜선 기자

20일 경기혈액원 혈액 냉장고에 보관된 혈액 주머니들. 채혜선 기자

코로나19로 헌혈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국내 확진자 첫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19일까지 전국에서 총 206개 단체가 헌혈 계획을 취소했다. 총 9135명의 헌혈이 무산됐다. 개인 헌혈자는 19만793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1만2875명보다 1만9000여 명 이상 줄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 4일 “코로나19로 헌혈자가 급격히 감소해 헌혈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를 호소한다”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전국 각 시·군과 경찰·소방 등 공공기관이 급한 불을 끄겠다고 나섰다. 지난 7일 경북, 10일 인천, 12일 부산·경남·창원·김해, 13일 수원·광주광역시·속초·서산 등에서 공직자들의 단체헌혈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들은 관공서를 찾은 헌혈 버스에 누워 소매를 걷어 올렸다. 지난 17일 서울시 공무원과 청와대 직원도 동참했다. 세종시는 21일 단체 헌혈 행사를 하기로 했다. 이들은 “국가적인 혈액 수급 위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서 헌혈 동참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때 주의 기준 아래로 떨어졌던 혈액보유량은 지난 17일 5.01일분으로 집계됐다. 혈액보유량이 적정량인 5일분을 넘긴 건 지난달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처음이다. 지난 5일 2.9일분까지 떨어졌던 혈액보유량은 20일 4.4일분을 기록하는 등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직 안심하기에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위기에도 헌혈 자원을 기복없이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경기혈액원 관계자는 “고비를 넘겼다고들 하나 평상시에나 위기에나 안정적으로 혈액을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9일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자기 많이 나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국 광역자치단체·지방자치단체에서 헌혈장려조례를 개정해 헌혈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평소에도 지역사회 혈액수급 상황을 인지해 수급 안정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심석용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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