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쌍의 '미군과 이라크 여인' 금지된 결혼으로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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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두쌍의 '금지된' 결혼이 이라크 사막의 공기를 우울하게 물들이고 있다. 플로리다 주 방위군 소속의 션 블랙웰(27)병장과 브레트 대건(37)상병은 지난 4월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배치됐다.

서로 다른 부대에 배속된 두 병사는 바그다드에서 각각 우연히 이라크인 여성을 만났고 곧 사랑에 빠졌다. 두 여성은 모두 전직 의사. 이 중 한 사람은 현재 바그다드에서 미국계 기업의 통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쌍의 사랑은 곧 결혼 약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금지된 사랑'이었다. 미군 군령이 '현지여성과의 결혼을 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바그다드에선 연일 반미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상황이어서 '적국'인 미국 병사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간 신부의 가족들마저 테러를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블랙웰과 대건은 동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격려에 힘입은 그들은 군령을 무시하고 지난 8월 17일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식으로 합동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들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군당국은 전격 조사에 착수했다. 군당국은 "이들의 행동은 상관의 명령을 무시한 것이며, 병사들의 기본 임무에서도 벗어났고 미군의 안전에 위협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부대 내에 신방을 차릴 수 없는 데다 군당국의 조치도 있어 신혼부부는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결혼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부들에겐 이웃 주민들의 협박과 괴롭힘 같은 수난도 닥쳤다. 신랑들은 "아내들을 즉각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군당국에 요구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AP통신은 블랙웰의 어머니 비키가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최근 플로리다주 연방 하원의원인 제프 밀러 의원에게 보냈다고 5일 보도했다. 그러나 밀러 의원은 대변인을 통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짤막한 답변을 발표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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