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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환의 미래를 묻다

‘바이러스로 인류 종말 올 수 있다’는 AI의 억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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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염병과 종말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세계적으로 ‘코로나19(COVID-19)’를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게 퍼지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해 중국 우한(武漢)에서 등장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다. 감염 속도가 2002~3년의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사스)보다 훨씬 빠르다. 더 끔찍한 바이러스도 많다. 지구 남북을 오가며 계절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있다. 백신이 있는데도 매년 30만~6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올겨울 미국에서도 1만 명 넘게 사망했다.

면역력으로 수십만 년 버틴 인류 #바이러스 관련 과학기술 발달해 #이젠 방역·진단·증상관리 가능 #정말 경계할 건 ‘가짜 정보 전염’

대항해시대에 신대륙을 초토화한 천연두·소아마비도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간염·면역결핍증(HIV)·에볼라·유두종·한타 바이러스의 피해도 심각하다. 가축을 괴롭히는 바이러스도 넘친다. 인류가 바이러스 때문에 멸종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주장을 부추기는 인공지능(AI)도 있다.

감염성 질병의 병원체는 대부분 생물 종 사이의 장벽을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이러스·박테리아·진균·기생충 등 하찮은 미물들이다. 생태계의 구성원인 병원체 입장에서 인간은 치명적인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서식 후보지일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병원체의 공생 요구를 무작정 수용해주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면역체계를 가동해 물리쳐 버리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심각한 피해를 보기도 한다. 우리 면역체계의 과잉대응으로 일어나는 ‘사이토킨 폭풍’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인수공통전염병

메르스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키는 인수(人獸)공통 전염병은 어제오늘에 시작된 게 아니다. 야생동물을 식용·약용으로 사용하던 인류에게 인수공통 전염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단순한 접촉만으로도 병원체 감염이 가능하다. 가축·반려동물·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환경파괴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었다는 지적은 온전한 착각이다. 오히려 산업화·도시화로 자연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사람에게 서식처를 뺏긴 야생동물이 모두 멧돼지처럼 도심에 출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맹목적인 환경·생태주의가 새로운 인수공통 전염병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우한 발 사태를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는 3만 개 정도의 염기로 구성된 RNA형 유전물질이 왕관 모양의 독특한 돌기를 가진 둥근 단백질 껍질 속에 들어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농경을 시작한 1만여 년 전에 사육하던 개·소·돼지·말과의 밀접 접촉을 통해 인류에게 토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 전자현미경을 통해 닭의 가검물에서 처음 그 모습을 확인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두통·인후염·기침을 동반한 일반 감기를 일으킨다. 소·돼지에게는 설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주로 침방울이나 배설물을 통해 확산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돌기의 세부적 특성에 따라 감염성과 증상이 크게 달라진다. 우한에서 출현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와 천산갑을 거쳐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도됐다. 박쥐와 평화롭게 공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력이 없다. 천산갑의 세포 속에서 유전물질의 20%를 교체해야만 인간을 괴롭히는 변종이 된다.

1918년 5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중앙포토]

1918년 5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중앙포토]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부쩍 잦아지고 있다. 사스 이후 벌써 3번째 바이러스 대유행(판데믹)이다. 그런데 바이러스의 유전적 변신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일상적이다. 숙주의 면역작용을 회피하고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는 탁월한 생존전략이다. 바이러스가 자신들의 서식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는 인간을 응징하기 위해 더욱 치명적인 악성으로 변신한다는 주장은 황당한 것이다.

유전적으로 많은 것을 물려받지 못한 바이러스에게 허용되는 변신의 폭은 대단히 크다. 심지어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통째로 훔쳐내 자신의 유전물질에 삽입시키는 ‘상동 재조합’이라는 극단적 방법도 쓴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서 기생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됐다. 심지어 세포 한 개로 어렵사리 살아가는 박테리아에 빌붙어 살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화려한 변신이 생태계의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켜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바이러스의 변신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실패로 끝난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처음 등장해 세계적으로 8098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을 희생시킨 사스도 9개월 만에 지구상에서 영원히 퇴출당했다. 과학기술로 중무장한 인류 사회의 거센 집단 대응에 밀려나 버렸다. 치사율이 30%에 이르는 최악의 천연두 바이러스도 18세기 말에 개발된 백신 때문에 1980년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췄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언제나 힘겨웠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세계적으로 5000만 명 넘는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3·1운동 직전까지 20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인구의 1%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바이러스의 정체도 알지 못했던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가 인제 와서 갑자기 겁에 질릴 이유가 없다.

전염병 잦아진 원인은 인구·이동 증가

100년 전 스페인 독감 환자 격리 시설. 우리나라에서도 20만 명이 사망했다. [중앙포토]

100년 전 스페인 독감 환자 격리 시설. 우리나라에서도 20만 명이 사망했다. [중앙포토]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부쩍 심각해지고 있다고 해서 독성이나 전파력이 더 강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구가 늘고, 이동이 잦아진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원인이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인구가 줄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산속에서 고립된 ‘자연인’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인류가 지금까지 정체불명의 역병(疫病)을 극복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적인 면역력이 유일한 방어무기였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물론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희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의 유전적 변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항생제 개발이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을 부추긴 아픈 경험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을 활용한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포기할 이유는 없다. 깨끗한 물과 비누,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일차적인 집단 방역수단이다. ‘중합 효소 연쇄반응(PCR)’ 이란 것을 이용한 진단 키트가 있고, 열 감지 화상 카메라도 있다. 감염자들의 증상을 관리하는 현대 의학도 있다. 음압(陰壓) 병실이 있고, 암모늄·알코올 소독제는 감염 확산을 막아준다. 방역에 필요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위험 지역의 국민을 안전하게 귀국시킬 수 있는 경제력도 갖췄다.

집단 혼란을 부추기는 가짜뉴스에 의한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을 경계하고, 정부가 확실하고 합리적인 방역대책을 실행하면, 바이러스 퇴치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순한 확산 방정식에만 매달리는 인공지능의 어설픈 종말론 예언에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인류의 집단지성과 과학기술의 힘을 믿어야 한다.

어설펐던 이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2일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뜻으로 ‘COVID-19’라는 기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앞서 청와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명칭을 권고했다. 어딘지 어설프다. 메르스나 사스처럼 호흡기증후군이 명백한 질병을 굳이 ‘감염증’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 짧고 간결한 단축어를 선호하는 언어 환경에도 맞지 않는다.

‘신종’(新種)이라는 수식어도 어색하다. 2009년 ‘신종 플루’도 우리만 사용한 엉터리 작명이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변종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신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란 이름은 아마 WHO가 한동안 ‘novel coronavirus’라고 했기에 나온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novel’은 단순히 ‘정체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서 새로운’이라는 뜻이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도 공식 명칭이 확정될 때까지 8개월 동안 같은 이름(novel coronavirus)을 썼다.

전염병의 이름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역이나 동물 이름을 넣었다가 불필요한 차별과 혐오가 확산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WHO는 2015년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처럼 병원체와 증상만을 근거로 이름을 붙이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덕환 교수

서강대 명예교수로 화학과 더불어 과학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저서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등이 있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